
반도체 업계의 요구였던 '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안(반도체특별법)' 합의처리가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불발됐다. 연구개발(R&D) 분야 주52시간 노동제 유연화를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이가 큰 탓이다. 정파적 이익 때문에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결국 양당 지도부가 국정협의회 등을 통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는 17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반도체특별법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가 반도체 산업 기반 조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 관련 기업의 인프라 투자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담았다.
앞서 여야가 지난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반도체 R&D 및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일몰 기한을 2031년 말까지 연장하고 △반도체 분야 R&D 및 시설투자 공제율을 현행 대·중견기업 15%, 중소기업 25%에서 각각 20%와 30%로 올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을 합의처리하면서 반도체특별법 통과에 대한 기대감이 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소위에서는 R&D(연구·개발) 분야 주52시간 노동제 유연화를 두고 여전히 갈등이 컸다.
여야는 그동안 해당 제도가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특별법 합의 처리를 위해 협상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여당 중진 일부가 'R&D 분야 주52시간제 유연화'를 포함한 반도체특별법을 제시했고 용수·전력 등 인프라 구축, 보조금 혹은 세제 지원 정책 등을 노동 유연화와 함께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협상이 공회전했다.
반면에 민주당에서는 노동 유연화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입장이 주류다. 특히 당내 일각에서는 해당 제도를 반대하는 근거로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SK하이닉스를 들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은 주52시간제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경영진의 판단에 달렸다는 취지다. 또 주52시간제라는 대전제에 예외를 두는 법안인 만큼 특정 산업군의 특별법 형태가 아닌 근로기준법에서 다뤄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후 이재명 대표가 △총 노동시간 증가 불가 △반도체 산업 R&D에만 한정 △일정 수준의 고액 연봉을 넘어가는 주요 전문가(연구자)만 대상 △대상자의 동의 △일몰제 도입 등 골자로 한 조건부 근로 유연화를 언급했지만 당내 의견 수렴과 노동계 설득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리면서 민주당은 사실상 반도체특별법 분리 처리를 추진해왔다.
결국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위해서는 양당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분수령은 오는 20일 열리는 국정협의회다. 정부와 국회, 양당이 민생·경제 분야 정책을 국정협의회에서 다루기로 한 만큼 대승적 결단을 통해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극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다음에 열리는 소위에서 민주당이 표결을 통해 강행처리한 뒤 이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여야는 이견을 좁히기 위한 협상은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김원이 민주당 산자위 간사는 반도체특별법 무산 이후 취재진과 만나 “표결 처리하자는 주장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자위가 그동안 합의 처리 정신을 비교적 잘 지켜왔다”면서 “가능한 합의로 설득하려는 게 현재까지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