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고대역폭메모리)은 핵무기 시대의 순수 우라늄과 같습니다. 우리가 HBM 주권을 가져야 트럼프 대통령이든 젠슨 황 CEO이든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습니다.”
김정호 KAIST 교수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AI G3 강국 신기술 전략 조찬 포럼'에서 이같이 밝히며 HBM산업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HBM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 교수는 이날 'HBM이 대한민국을 살린다'는 주제 발표에서 “샘 알트먼 오픈AI CEO가 'GPU가 녹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 병목은 HBM에서 발생한다”며 “오픈AI의 SORA 같은 초해상도 영상 생성 AI조차 HBM 없이는 구동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AI 알고리즘이 아무리 뛰어나도 데이터를 지탱하는 건 결국 메모리이며, 지금은 HBM이 성능을 좌우하는 시대”라고 평가했다.
특히 김 교수는 올해 출시되는 'HBM4'부터는 연산 기능이 포함된 '베이스 다이(Base Die)'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며, “설계는 엔비디아, 공정은 TSMC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이 대응하지 못하면 HBM 주권 자체를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GPT로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사람보다 빠르고 쉬지 않는 AI가 반도체 설계를 주도하는 만큼 연구·설계·생산 생태계를 통째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깔아 현대자동차가 성장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해 네이버·카카오가 등장했다”며 “이제는 AI 데이터센터가 국가 성장 인프라가 될 차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차원으로 대응 전략으로 △전국 10개 반도체학과 설립 △300명 규모의 HBM 기초 연구센터 구축 △산업체 박사급 인력의 교수 활용 △초고액 연봉을 통한 글로벌 인재 확보 등을 제안했다. 그는 “AI 인재는 30억 원의 연봉을 주고서라도 데려와야 할 만큼 국가적 전략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인재 양성과 반도체 생태계 혁신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정상록 SK하이닉스 부사장은 “HBM은 우리 산업을 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레버리지”라며 정부의 R&D 및 패키징 인프라 확대를 촉구했고, 허준 삼성글로벌리서치 상무는 “고성능 서버용뿐 아니라 엣지·워크스테이션 수요까지 선제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AI 스타트업계 관계자들은 인재 영입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상희 센드버드코리아 대표는 “전쟁 중에는 전시에 걸맞은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며 “평시형 인사·보안 체계로는 30억짜리 인재를 데려올 수 없다”며 현실적 애로를 토로했다.
김용호 서울대 공대 학장은 “의학계 쏠림에도 공학에 열정을 갖고 오는 우수 인재들이 있다”며 “인재 양성 관련해서는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성장을 위한 보상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해외 석학을 초청해 주거와 교육 여건을 지원했던 사례처럼 지금도 그런 결단이 필요하다”며 국회 차원의 예산 반영을 약속했다.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와 반도체를 안보자산으로 인식하고 절박하게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며 “HBM 기초연구센터와 인재 양성 계획을 2026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도 “HBM은 이제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문제”라며 정부·국회·기업이 공동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은 “AI 인프라 구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HBM을 핵심 축으로 설계·상용화 지원 사업을 정부와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