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SKT 해킹사고는 위약금면제 대상 아냐…귀책사유는 통신서비스에 한정”

서울 중구에 위치한 SKT 직영 대리점
서울 중구에 위치한 SKT 직영 대리점

SK텔레콤 유심 정보 해킹 사고가 요금제 이용약관에 명시된 위약금 면제(위면해지) 조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조계 의견이 나왔다. 약관에서 말하는 귀책사유는 통신서비스 제공 의무에 관한 것으로 이번 사이버 침해사고의 경우 위약금 면제가 아니라 배상 책임 대상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을 비롯한 KT와 LG유플러스 등 이통통신 3사는 요금제 이용약관에 회사의 귀책 사유시 위면해지가 가능하다고 공통적으로 명시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유심 정보 해킹 사고 귀책사유가 SK텔레콤 측에 있는 만큼 해지 위약금을 면제해야 한다며 압박을 높이고 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약관을 면밀히 해석하면 이번 사이버 침해사고는 위면해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데 힘을 싣는 분위기다. '회사 귀책시 위약금 면제' 조항은 통신서비스의 정상 제공 여부에 관한 것이며 이번 침해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은 별개 조항으로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정보통신정책학회장을 지낸 이희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약관상 위약금 면제와 침해사고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되는 법적 근거가 다르다”면서 “통신사 약관대로라면 각각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만약 회사의 미흡한 대처로 불안감을 느낀 고객이 다른 통신사로 이동하려 한다면 위약금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위약금을 내고 해지한 후 해당 금액에 대한 반환 청구소송 등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짚었다.

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인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도 “약관에서 말하는 귀책사유는 계약상 급부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 발생하는데 이번 SK텔레콤의 경우 통신서비스 제공에 대한 의무는 다하고 있다”면서 “통화나 데이터 등 통신서비스 공급에 중단이 없었던 만큼 위면해지 요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사이버 침해사고 발생때마다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면 계약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면서 “이로 인해 실질적 피해가 발생했다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실질적 손해를 봤다고 보기 어렵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면책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위약금 면제 조건은 계약 대상인 통신서비스의 정상적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번 사태와 연관 짓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법리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실제 이통 3사의 이용약관을 살펴보면 위면해지 조항과는 별개로 침해사고에 대한 대응 방안과 보호조치 의무, 배상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위약금 면제가 가능한 경우는 서비스 품질 불량과 물리적 이유로 정상적인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경우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위면해지에 해당하는 회사의 귀책사유에 대한 예시로 요금제 폐지를 명시했다. 한마디로 계약에서 정한 서비스 급부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로펌 관계자는 “약관에서 위면해지 조항은 통신서비스의 이용 자체가 불가능할 때를 상정해서 만든 조항”이라며 “이번 침해사고로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닌 만큼 회사가 선제적으로 위약금을 면제할 경우 배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명확한 사고경위가 밝혀지지 않았고 실질적 피해가 발생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약금 면제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도 정부가 고심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도 앞서 열린 청문회에서 위약금 면제시 한 달내 가입자 500만명이 이탈할 수 있고 7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된다며 현재로선 위약금 면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