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호 100대사건]〈47〉IT강국의 자존심 뭉갠 1.25 인터넷 대란

차양신 정보통신부 정보보호기획과장이 2003년 2월 18일 오전 정보통신부 기자실에서 '1.25 인터넷 대란'과 관련 원인조사 결과 및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차양신 정보통신부 정보보호기획과장이 2003년 2월 18일 오전 정보통신부 기자실에서 '1.25 인터넷 대란'과 관련 원인조사 결과 및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2003년 1월 25일 토요일 오후. 전국의 인터넷이 멈췄다. 은행도, 언론사도, 정부도 모두 온라인이 끊겼다. 초고속인터넷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에서 벌어진 초유의 사태였다. 훗날 이 사건은 '1·25 인터넷대란'으로 불리게 된다.

인터넷 대란으로 이메일, 검색은 물론 공항 운영 시스템, 금융기관 전산망까지 먹통이 됐다. 정부는 즉각 비상체제에 돌입했고,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밤새 원인 파악에 나섰다.

사건 원인은 '슬래머 웜' 바이러스였다. 전 세계로 퍼지던 컴퓨터 바이러스가 한국의 핵심 인터넷 연결 지점을 마비시켰다. 단 376바이트 크기였지만, 감염 확산 속도는 놀라웠다. 한국에서 약 8800대 서버가 감염됐고, 이는 전 세계 감염의 11%에 달했다. 인터넷 대란은 약 9시간 넘게 이어졌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이 사태가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점이다. 문제를 일으킨 바이러스는 이미 6개월 전, 예방할 수 있는 조치가 공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고, 서버 관리도 허술했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자부심 속에 기본적인 점검이 소홀했던 것이 대란을 불러온 셈이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 기반 시스템에 대한 보호 대책을 서둘러 마련했다. 전담 기구를 만들고 백업 시스템을 갖추도록 법제화했으며, 1년 뒤에는 사이버안전센터도 세웠다. 1.25 인터넷대란은 '인터넷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정보보안 중요성을 각인시킨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정다은 기자 dand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