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조지아주 구금 사태를 목도하며, 함께 분노하고 아파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글로벌 대화합의 시대가 종식되며, 우리는 이제 본격적인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치열한 대립을 불사하는 혼돈의 시대이며,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기다. 동시에 이러한 시대의 변화가 가져올 또 다른 기회 속에서 새로운 혁신가들의 등장이 기대되는 때이기도 하다.
시간을 거슬러, 2000년대 이후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면 전 세계는 기술 혁신과 함께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협력·초연결의 시대를 보냈다. '커플링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각국 경제와 시장의 동조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덕분에 아시아 지역의 번영과 경제 성장이 도래했지만,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본시장 내 선진국과 신흥국의 상관관계가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분산투자 방식만으로는 포트폴리오 전체의 위험을 줄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가 몸담았던 퀀트 헤지펀드에서는 심화되는 '커플링'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지역으로의 투자 저변 확대가 필요했고, 짐바브웨, 가나, 트리니다드토바고 등을 포함, 글로벌 경제와는 절연돼 로컬 생태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프런티어 마켓' 지역에 투자를 결정했다.
이러한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하는데 가장 큰 기술적 걸림돌은 신뢰할 수 있는 기업 재무 정보와 거래 데이터의 부족이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뉴스와 같은 각종 비정형 데이터를 투자 결정의 토대가 되는 정보로 바꿔야 했다. 우리는 머신러닝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이 분야의 저명한 MIT 석학을 영입해 속도를 높였다. 학계 출신 동료들과 협력해 로이터 뉴스 정보 등 텍스트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해 수치화하는 기술 스택과 인프라를 구축한 경험은 필자의 커리어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머신러닝을 기관자금 운용에 적용한 선도적인 사례일 뿐 아니라, 2010년 이후 가시화된 인공지능(AI) 기반의 새로운 주가 예측 엔진 개발의 초석이 됐다.
다시 오늘로 돌아와, 새로운 질서 아래 인류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혁신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자. 그 혁신은 효율성과 편리성을 갖춰야 할 뿐 아니라 국가나 지역 간 보호주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형태를 띠어야 한다. 첨단 기술 적용도 중요하지만, 기술 도입에 앞서 구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거시적 문제를 먼저 정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토대 위에 문제 해결의 기술 로드맵을 수립한 국가나 기업이 인류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프런티어 마켓 전략 사례처럼, 기술은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적용됐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혁신 기술은 그 자체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하나, '기술에서 시작해 적용 영역을 찾아가는 접근법'은 비효율적이다.
“모호한 목표는 모호한 결과를 낳는다”는 잭 캔필드의 말을 상기하며,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혁신가들의 도전을 신뢰하고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정부는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롭게 문제를 정의하는 이들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산업 내 저항을 균형있게 바라보고, 그들의 권익을 안전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들은 역경마저도 자양분으로 삼아, 놀라운 도전과 혁신을 이어갈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나라에서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관통하며 산업을 이끄는 데카콘 기업이 여럿 탄생할 날을 기대해 본다.
이지혜 에임 대표 ga@getaim.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