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우 산업이 과학기술을 만나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유전 개량부터 숙성 공정까지 전 과정에 데이터와 기술이 결합하면서 이제는 '맛과 향'까지 정밀하게 설계하는 시대가 열렸다.
30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한우의 출하체중을 575㎏에서 789㎏으로, 근내지방도를 약 42% 향상시켰다. 유전능력 평가와 교배 조합 분석, 맞춤형 영양 설계가 결합한 결과다. 생체중은 커졌지만 지방 분포는 균일해지고 육질은 부드러워졌다.
이 같은 개량 기반 위에 축산공정기술이 더해지며 한우의 풍미까지 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라디오파 숙성기술'이다. 농진청이 2023년 개발해 현재 민간 기업에 기술이전·상용화가 진행 중인 '라디오파(Radio Frequency·RF) 숙성기술'은 고기 내부를 균일하게 가열하고 냉풍으로 표면을 건조해 풍미를 높인다. 숙성시간은 기존 건식숙성(3주 이상)을 48시간으로 줄였고 수율은 85%에 달한다.
숙성 과정에는 유산균·효모 등 미생물이 활용된다. 단맛(알라닌·글리신), 감칠맛(글루탐산) 등 풍미 인자가 늘어나 향이 깊어지고 곡선형 전극을 적용해 덩어리 고기도 자르지 않고 균일하게 숙성할 수 있다. 냉장숙성 대비 에너지 사용량은 약 40% 줄었다.
또한 유전개량과 정밀 사양관리 기술로 '균질화된 고급육' 체계를 확립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한우는 평균 31.6개월령, 출하체중 789㎏으로, 일본 와규(29.5개월·808㎏), 미국 앵거스(18~22개월·630~700㎏)보다 육질 균형이 뛰어나다.

국립축산과학원의 육질 비교시험에서도 한우의 향미 점수는 4.9로 와규(4.0), 앵거스(4.1)를 웃돌았다. 근내지방 함량은 와규보다 낮지만 향과 맛의 조화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농진청은 유전체 분석과 사료 효율 개선을 결합한 '정밀 개량모델'을 확대하고 있다. 출하월령을 28개월 이내로 단축할 경우 연간 온실가스 18만톤을 줄일 수 있어 '탄소 저감형 한우 생산체계' 구축도 기대된다.
김진형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부장은 “한우의 고급화는 지난 30여 년간 축산 현장에서 축적된 기술 연구와 데이터가 실제 한우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앞으로도 축산물 고급화는 물론, 비육 기간 단축과 탄소중립 실현 등 지속 가능한 축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실용 연구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