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자유무역질서의 위기를 국제사회의 최대 현안으로 지목하고, 그 해법으로 '다자주의적 협력'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31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우리 모두는 국제질서가 격변하는 중대한 변곡점 위에 서 있다”며 “협력과 연대만이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 확실한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개회사에서 APEC이 다자주의 협력의 모범을 세워온 과정을 회고하며, 한국이 그 여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원년 회원국으로서 APEC의 발전을 이끌었고, 1991년 '서울 선언'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또 “2005년 부산에서는 아·태지역 무역 자유화를 위한 구체적 이행 방안인 '부산 로드맵'을 채택했다”며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고 서로를 개방할수록 APEC 회원들은 번영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APEC 출범 이후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이 5배, 교역량이 10배 증가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 단단한 공동번영의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도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협력과 연대, 상호 신뢰의 효능을 증명한 APEC 정신이 이곳 경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APEC 체제가 “거센 변화 속에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무역과 투자 활성화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희망찬 전망만 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기술 혁신과 연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AI 혁명은 전례 없는 위기이자 동시에 전례 없는 가능성”이라며 “협력과 연대만이 지금의 위기를 헤쳐 나갈 해답”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각자의 국익이 걸린 사안이기에 언제나 같은 입장일 수는 없지만, 공동번영이라는 궁극의 목표 앞에서는 함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 주제인 '우리가 만들어 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과 '연결, 혁신, 번영'이 2020년 채택된 '푸트라자야 비전 2040'의 정신을 잇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세션에서는 그 비전의 핵심축인 '무역과 투자 증진'에 대한 각국의 고견을 듣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회의가 열린 경주의 화백컨벤션센터를 언급하며 “고대 신라왕국에서는 나라의 중대한 일을 논의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화백회의'가 열렸다”고 소개했다. 이어 “'화백' 정신은 생각의 일치를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져 조화와 상생의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신라의 화백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난 29일 APEC CEO 서밋 특별연설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당시 “20년 전 APEC의 단결된 의지를 모아냈던 대한민국이 다시 APEC 의장국으로서 위기에 맞설 '다자주의적 협력'의 길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자유무역의 회복이 세계 경제의 지속가능한 번영으로 가는 출발점”이라며 보호무역 확산에 대한 우려와 함께 개방·연대의 가치를 강조했다.
경주=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