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관광지 한복판이 휴일엔 '무약촌'

[ET톡]관광지 한복판이 휴일엔 '무약촌'

얼마전 휴일, 제주도 여행 중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 으슬으슬 떨리고 목이 붓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병원과 약국을 찾아봤지만, 주변 어디에도 없었다.

편의점 감기약이라도 사야겠다 싶어 돌아다녔지만 대부분 취급하지 않았다. 약을 판다는 편의점은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24시간 편의점이라도 약을 파는지는 미리 알 길이 없었다. 지도에 표시된 약국은 모두 '휴무'였고, 결국 비대면 진료 앱의 도움을 받아 '지금 문 연 약국 찾기'에서 확인해야 했다. 서귀포 방향으로 한참 이동해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약국을 찾고 감기약을 구할 수 있었다.

제주 관광지 한복판에서 휴일에 감기약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약사법상 일반의약품은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고, 편의점은 해열제·소화제·파스 등 일부 품목만 제한적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든 편의점이 가능한 건 아니다. 정부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업소'로 등록된 곳만 가능하다. 24시간 영업·판매자 교육·유통기한 점검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약 8만여 곳이 등록돼 있지만, 전체 편의점 수에 비하면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접근성은 떨어진다.

정부는 불편 해소를 위해 '심야·휴일지킴이약국'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역별 편차가 크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주말이나 공휴일에 문을 여는 '휴일지킴이약국', 심야에 운영되는 '공공심야약국'은 일부 지자체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 220여개 공공심야약국 중 60%가 수도권과 6대 광역시에 집중돼 있다. 제주 동부나 농어촌 지역은 제도 밖이다. 대한약사회 휴일지킴이약국 사이트에 따르면 제주도의 공공심야약국은 서귀포 곶자왈 인근 단 한 곳뿐이다.

연간 1400만명이 찾는 제주에서조차 일요일에 '감기약 한 통'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관광객이 많을수록 의료 접근성은 높아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상비약 판매 확대와 관리 기준 현실화를 논의해야 할 때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