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AI 기반 조성] AI, 울산 화학산업 숙련공의 '감'을 데이터로 활용해 안전·효율 잡는다

수요기업 롯데정밀화학 현장
수요기업 롯데정밀화학 현장

육중한 화학 플랜트 내부. 고온의 증기가 배관을 타고 흐른다. 수백 개의 밸브와 펌프가 쉴 새 없이 진동한다. 숙련된 엔지니어는 기계음의 미세한 변화, 온도계의 0.1도 차이에서 고장 징후를 읽어냈다. 엔지니어의 '감(感)'은 수조 원대 설비와 작업자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하지만 이제, 울산의 제조 현장에서는 그 '감'을 AI가 데이터로 변환해 예측한다. 센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숙련자 경험을 능가하는 '디지털 주치의'가 되면서, 울산 산업의 위험은 예측 가능한 안전으로, 비효율은 최고 효율로 전환되는 혁신이 시작됐다.

◇울산 AI 전환, 국가 사업을 통해 가속화

이같은 변화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추진하는 '제조업 AI융합 기반 조성 사업(2024~2026)'을 통해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고 있다.

울산·경남·부산·경북·대구 등 영남권 5개 지역이 협력해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과 AI 융합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는 국가 프로젝트다. 울산광역시와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화학 산업에서 △지역 내 현안 해결을 위한 '수요맞춤형' △타지역 중점산업 내 현안 해결을 위한 '광역연계형' △영남권 화학산업을 대표하는 AI 선도 모델 구축을 위한 '확산거점형' 등 세 가지 'AI 솔루션 개발·실증' 과제를 추진한다. 화학산업 중심의 AI 전환 모델을 구축, 제조업 전반으로 혁신을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울산 정보산업진흥원
울산 정보산업진흥원

이번 사업을 통해 AI 기반의 예측진단 솔루션을 개발·실증한 '비츠로시스'와 '예측진단기술'은 울산의 산업 난제였던 설비 고장과 안전 관리에 답을 제시했다. 사람의 눈과 귀로 포착하기 어려운 미세한 이상 징후를 AI가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고장 발생 전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지보전(PdM) 시스템을 구축했다.

◇비츠로시스, 90% 정확도의 '디지털 주치의'

비츠로시스 솔루션
비츠로시스 솔루션

울산 정밀화학단지에 AI 솔루션을 적용한 비츠로시스는 설비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들이 개발한 시스템은 진동, 온도, 압력 등 설비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내부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이상 신호까지 감지한다.

LSTM 기반 패턴 이상 감지 모델을 통해 비정상 데이터를 포착하고, 진동 진단 전문가의 지식을 접목한 랜덤포레스트 모델로 이상 발생 원인까지 진단한다. 실증을 통해 약 2억원 생산 손실을 예방하고 설비 가동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복잡한 데이터 분석 없이 AI가 제시하는 진단 결과를 통해 현장 대응 전략을 즉시 세울 수 있게 됐다.

이기재 대표는 “AI가 설비 건강을 실시간으로 진단하는 '디지털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며, 고장 예측 정확도가 90%를 넘고 점검시간을 40% 이상 단축했다”고 밝혔다.

◇예측진단기술, 현장 즉시 진단이 가능한 'AI 포터블 시스템'

예측진단기술 솔루션
예측진단기술 솔루션

예측진단기술은 휴대형 장비를 활용해 현장에서 즉시 설비 진단이 가능한 AI 예지보전 시스템을 개발했다. 화학 설비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이 시스템은 신속한 현장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진동, 음향방출(AE), 온도 등 다중 센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오토인코더 기반 이상 감지와 CNN 기반 고장 진단 알고리즘을 적용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탐지한다. 국제표준(ISO 13373·18436)에 근거한 분석 기법으로 진단 객관성을 확보했다.

또 AI 에이전트가 클라우드 서버와 연동돼 점검 이력과 부품 교체 주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유지보수 효율을 극대화한다. 설비 중단 시간 감소, 장비 수명 연장, 현장 운영 안정성 개선이라는 삼중 효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김종면 대표는 “AI가 사람보다 먼저 설비의 진동 변화를 감지해 사고 위험을 줄이고 있다”며 “기존 하루 걸리던 점검이 3시간 이내로 단축됐고, 고장 예측 정확도가 90% 이상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AI가 운영하고 산업이 스스로 진화하는 'AX 혁신 거점'

울산은 △초음파 신호를 자동 판독하는 '딥아이' △작업자 안전을 실시간 분석하는 '마크로버' △플랜트 유지관리 전략을 세밀하게 설계하는 '이에이엠' 등 다양한 AI 솔루션이 현장에 투입되며 AX 혁신 거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AI 적용으로 비파괴검사 판독 속도는 빨라졌고, 고장 예측의 정확도는 90%를 웃돌게 됐다. 현장 대기 시간이 줄고, 반복 점검 부담도 감소했다. 공장 가동률은 꾸준히 상향 흐름을 타고 있다. 설비의 잔여 수명이 정확히 관리되면서 유지보수 비용 부담이 감소한다. AI 기반 기술을 다루는 전문 인력 수요도 증가한다.

현장 관리자들은 “과거엔 놓쳤을 작은 변화들이 AI 시스템에서는 즉시 알림으로 뜬다”며 “사고 위험도 체감할 정도로 줄었다”고 호평했다. AI 도입은 비용 절감 효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장병태 울산정보산업진흥원 원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울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 제조업 전반에 스마트 산업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AI 기반 솔루션이 확산되면 에너지 효율화, 노동력 절감, 안전 강화 등 제조업의 난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울산광역시 화학 산업 분야 제조업 AI 융합 기반 조성 참여기업 현황
울산광역시 화학 산업 분야 제조업 AI 융합 기반 조성 참여기업 현황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