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메모리 강국이란 말에 이견은 없다. 그러나 비메모리, 즉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세계 시장 점유율 3% 내외로 그야말로 불모지에 가깝다. 메모리 중심 산업 생태계 탓에 시스템 반도체가 뒤쳐졌다. 특히 막대한 인력이 투입되는 반도체 설계(팹리스) 특성상 우수 인재 확보부터 난항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한국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 작은 빛줄기가 생겼다. 바로 '신경망처리장치(NPU)'다. NPU는 AI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로, AI 작업을 전력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NPU에서 엿보인다.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장악하고 있다. 쿠다(CUDA)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AI 생태계를 구축했고, GPU 자체가 가지는 범용성 덕분이다. 특히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이터센터에서 GPU 수요가 강력하다.

그러나 AI 영역이 점점 세분화되고 동시에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제조·의료·자동차·PC·스마트폰 등 산업별 특화된 AI 필요성이 커져서다. GPU가 주도하는 AI 시장의 작은 틈새가 생겼고, 그 자리를 NPU가 서서히 침투하고 있다.
시장 가능성을 본 '젋은 피'들이 대거 NPU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척박한 시스템 반도체 환경에도 도전장을 던진 리벨리온·퓨리오사AI·모빌린트·딥엑스 등 반도체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은 수년간의 연구개발(R&D) 끝에 저마다 독자적인 NPU 칩 개발에 성공했다.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는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모빌린트와 딥엑스는 '엣지 AI'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엣지 AI는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기기 단에서 자체적인 AI 연산을 의미한다.
특히 GPU가 손을 뻗지 못한 엣지 AI 시장은 한국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로봇 시장이 커지면서 피지컬 AI 수요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며 “엣지 AI NPU가 충분히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도 대규모 투자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도 탄생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팹리스 산업 특성 때문이다.
NPU 기업들은 대부분 첨단 공정으로 반도체를 설계하는데, 이 설계 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고가의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솔루션과 설계자산(IP)을 확보해야 지속적으로 NPU를 개발할 수 있다.
김정호 KAIST 교수는 “NPU와 같은 AI 반도체 기업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가 갖춰지기 전 까지 상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아우르는 융합형 반도체 인재 양성에도 대규모 투자가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