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0 패션 플랫폼 퀸잇 운영사 라포랩스가 데이터홈쇼핑(T커머스) 업체 SK스토아를 품으면서 18년 만에 홈쇼핑 인수·합병(M&A) 거래가 성사됐다. 전통 유통 기업이 아닌 버티컬 패션 플랫폼이 새로운 플레이어로 참전하면서 홈쇼핑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라포랩스의 취약한 재무 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라포랩스는 24일 SK텔레콤과 SK스토아·미디어S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인수 금액은 약 1100억원으로 책정됐다.
홈쇼핑 업계에서 M&A가 성사된 것은 지난 2007년 롯데쇼핑이 우리홈쇼핑을 인수한 이후 약 18년 만이다. 2015년 개국한 신세계라이브쇼핑의 경우 이마트가 개국 이전 화성산업으로부터 드림커머스를 인수해 홈쇼핑 사업에 진출한 사례다.
무엇보다 업력이 5년 남짓한 신생 e커머스 기업이 전통 유통 채널 중 하나인 홈쇼핑을 인수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현재 국내 홈쇼핑 산업은 12개 기업이 17개 채널을 운영 중이다. 운영 주체 대부분이 전통 유통 기업이나 유료방송 계열사로, 플랫폼 기업이 홈쇼핑을 직접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포랩스가 홈쇼핑 업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주목된다. 주요 홈쇼핑 사업자들은 모기업 강점을 활용한 시너지 창출에 집중해왔다. 신세계라이브쇼핑은 신세계백화점의 상품기획(MD) 역량을 홈쇼핑에 접목해 출범 10년 만에 업계 매출 1위로 올라섰다. CJ온스타일은 CJ ENM의 콘텐츠 기획 역량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지식재산권(IP) 라인업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SK스토아 역시 라포랩스의 강점을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라포랩스는 SK스토아 모바일 사업을 우선적으로 손볼 계획이다. 외주 비중을 줄이고 모바일 사업을 직접 운영해 비용을 절감하고 내부 역량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경쟁 홈쇼핑 대비 후발 주자로 평가받아온 SK스토아의 패션 카테고리 역시 퀸잇과의 결합을 통해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반대로 라포랩스는 SK스토아의 폭넓은 MD 역량을 발판 삼아 통합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의 확장을 노릴 수 있다. 버티컬 패션 플랫폼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추가적인 성장 동력을 증명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M&A라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해 라포랩스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711억원으로, 같은 기간 3023억원을 기록한 SK스토아의 4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포랩스는 아직 연간 흑자를 달성한 적도 없다. 이번 인수를 위해 자체 현금성 자산 약 650억원을 투입하지만, 벤처캐피탈(VC) 투자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대주주 변경 심사를 맡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 역시 재무 안정성을 주요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방송법 시행령에 따르면 방미통위는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시청자 권익 보호 △사회적 신용 및 재정적 능력 등을 기준으로 승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방미통위가 아직 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대주주 변경 승인 시점은 내년 2~3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내년 4월 예정된 SK스토아 방송 사업권 재승인 심사와 맞물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라포랩스는 SK스토아로부터 주요 자료를 넘겨받고 심사 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은 허가 산업인 만큼 다른 유통 채널에 비해 새로운 시도가 제한적이고 구조적으로 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플랫폼 기업 특유의 기획력과 속도를 어떻게 홈쇼핑에 접목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