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고 발생 한 달 만에 처음으로 공개 사과했다.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고, 조속한 대고객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체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수습 국면 전환을 시도해 온 쿠팡이 김 의장 사과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지 이목이 쏠린다.
김 의장은 28일 “쿠팡에서 일어난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고객과 국민들께 매우 큰 걱정과 불편을 끼쳐드렸다”며 “쿠팡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한 배경으로는 유출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했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모든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쿠팡은 지난 25일 개인정보 유출자를 특정해 고객 정보를 모두 회수했으며, 외부 유포·판매는 없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 의장은 그간 비판을 받아온 초기 대응 미흡에 대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그는 “유출자가 탈취한 고객 개인 정보를 100% 회수하는 것만이 '고객 신뢰 회복'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렇게 달려오다 보니 국민 여러분과 소통에 소홀했고 모든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 들인다”고 강조했다.
최근 불거진 정부와의 진실 공방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김 의장은 “쿠팡은 사고 직후 유출자를 특정해 정부에 통보했고 정부와 협력을 통해 사용된 장비와 유출된 정보를 신속히 회수했으며 모든 관련 자료를 정부에 제출했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단언했다. 이는 앞서 “쿠팡의 주장은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는 정부 입장과 엇갈린다.
김 의장의 사과문 발표를 계기로 쿠팡이 여론 반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의장은 사태 발생 이후 계속해서 침묵해왔다. '미국 기업' 정체성을 앞세워 리스크 관리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이어진 배경이다. 특히 지난 10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Inc 법무 총괄을 임시 대표로 파견하면서 책임 회피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다만 김 의장이 직접 공개 석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그는 오는 30~3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국토교통위원회, 정무위원회, 기후노동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외교위원회 등 6개 상임위가 공동으로 여는 '쿠팡 연석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일각에서는 김 의장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반쪽짜리 사과'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번 청문회에서의 차이점은 박대준 전 쿠팡 대표의 출석이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쿠팡이 공개한 자체 조사 결과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압박은 오히려 거세질 전망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과 국민들, 그리고 국회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며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국회는 국회의 일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