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외였다. 우주센터나 교통센터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수십대의 모니터가 연결된 '화려한' 장면을 예상했다. 하지만 직접 찾은 현장은 여느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라면 일반 직원들보다 좀 더 많은 대여섯개의 모니터를 보고 있는 정도였다. 복잡하긴 커녕 오히려 더 간소하고, 간결한 모습이었다.
지난달 19일 LG디스플레이 파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을 방문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국가첨단기술의 심장부라서가 아니다. 한국 제조업의 미래, 인공지능(AI) 혁신이 가장 잘 구현된 곳이 바로 파주 OLED 공장이기 때문이다. 파주 OLED 공장은 AI 경쟁력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LG그룹 내에서도 모범사례(레퍼런스)가 될 정도로 인정 받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 곳을 'AX 팹'이라고 불렀다. 자동화를 넘어 AI로 작동하는 공장(팹)이란 의미에서다. 그간 익히 들었던 자동화된 공장, 스마트 팩토리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 것일까.
![[신년기획] 피지컬AI 현장을 가다-LG디스플레이 파주 OLED 팹](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1/05/news-g.v1.20260105.4807142dd79240d0b3a232d3c575eef5_P1.jpg)
◇ 사무실에서 원격운영하는 공장
LG디스플레이 협조를 받아 보안 검사 후 '원격운영시스템(ROS)실'을 찾았다. ROS는 팹 내부에 직원을 두는 대신 대부분 업무를 자동화해 원격으로 제어하는 곳이다. LG디스플레이는 2009년부터 공장 무인화를 추진, 일찍부터 ROS실을 만들었다.
무인화를 목표 삼은 것은 업의 특성 때문이다. 완전무결한 상태에서 만들어야 하는 디스플레이이기 때문에 사람 개입의 최소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원격제어는 AI 접목으로 고도화됐다. AI가 실시간으로 설비 상태가 변하거나 평소와 다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인식해 전달하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직원이 변화하는 데이터를 보고 이상한 점을 확인해야 했다면, 이제는 학습된 AI가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문제 여부와 사안의 경중까지 알려준다. 직원은 AI가 전달하는 내용에 따라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ROS실에 들어가니 직원들이 보고 있는 화면에는 도면처럼 그려진 시설의 각 설비가 초록, 노랑, 빨강, 파랑, 보라 등 색상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색이라는 직관적인 수단으로 사전에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설비의 정상 가동, 휴식 등 실시간 상태를 분류해 알려줘 작업자가 인지하기 쉬워보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AI가 작업자가 보고 있는 모니터 화면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AI에 학습된 문제여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지 △빨리 해결해야하는 중요한 문제인지 등을 도식화해서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직원은 사무실에서 모든 데이터들을 확인하고 대응이 가능해 반드시 공장에 들어가야 하는 일부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손쉽게 대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전에는 설비 하나당 한 사람씩 지켜봤다면 이제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설비를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며 “체감하기로는 예전에 100명이 할 일을 10명으로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계측 과정에서 장비가 보내오는 오계측 데이터에 대한 판단도 AI의 몫이 됐다. 기존에는 모니터에 공정 프로세스 계측 정보에 이상 데이터가 나타났다는 알림 표시가 나타나면 사람이 이를 보고 잘못 계측했는지 여부를 직접 판단해야 했다. 이제는 학습된 AI가 계측 이미지를 보고 오계측을 한지 여부까지도 판단해 알림을 보내는 게 가능해졌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AI가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만 사람에게 판단을 요청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판단에 대한 로그를 다시 AI에 학습해 다음에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 엔지니어는 공정 개선에 집중
AI로 엔지니어 역할도 달라졌다. 진행되는 공정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아 조치하는 유지보수 업무보다는 공정이 더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개선하는 업무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일반적으로 미터 단위 대형 원장 유리 위에 복잡한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단위의 회로와 발광층 등을 겹겹이 구성해 만들어진다. OLED의 경우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140개 이상의 공정을 거쳐 생산된다. 매 과정마다 재료의 배합이나 설비 조정 등이 생산에 큰 영향을 끼친다. 수만 가지 데이터가 조합돼 하나의 완성품이 탄생한다.
기존에는 엔지니어가 공정 하나하나를 수동 제어하면서 관리하고 문제를 해결해왔다.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조합해 가장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들었다.
김성호 LG디스플레이 생산기술담당 상무는 “AX팹 도입 전에는 엔지니어의 유지보수 업무 비중이 높았다”면서 “도입 후에는 유지보수를 위한 데이터 수집, 분석, 조치, 관리 등 일련의 과정을 자동으로 진행할 수 있어 공정 개선을 위한 개선 업무 비중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특히 공정 관리를 위한 엔지니어 업무 대응 시간을 60% 이상 줄였다. AI가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공정 인자 변화를 포착해 스스로 보정한다거나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AI는 생산 물동 계획이 정해지면 각 공장, 라인, 설비 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합, 최단 시간에 최대 물량을 생산할 계획을 수립하고 자원을 투입하기도 한다. 설비 성능을 최적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데이터 관리와 제품 불량에 대한 분석도 AI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이다.
LG디스플레이는 AI 도입으로 품질 개선에 걸리던 시간이 평균 3주에서 2일로 크게 단축됐고, 양품 생산량 확대로 연간 2000억원 이상 비용 효과도 창출했다. 디스플레이 공장에 AI를 도입한 효과, 즉 우리나라만이 할 수 있는 '제조 AI', '피지컬 AI'를 실현한 것이다.
회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AX팹을 더 고도화할 계획이다. AI의 판단 결과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판단 근거를 도식화하거나 자연어로 설명할 수 있는 소통 기능도 추가하는 한편 더 나아가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 아직 사람이 하고 있는 복잡하거나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모바일을 필두로 TV, 정보기술(IT),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OLED 공정 전반에 'AI 생산체계'를 전면 적용해 나갈 방침이다.
파주=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