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통상부가 국내 40나노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신설을 추진한다. 4조5000억원을 투자해 한국형 TSMC를 만든다.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레거시 반도체 파운드리를 시작한다는 게 뜻깊다.
파운드리 산업을 시작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결정이다. 초기 엄청난 적자를 견디며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TSMC가 1987년에 설립됐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실질적인 흑자로 전환했다. TSMC는 세계 최초에 순수 파운드리로서 경쟁자가 없었음에도 흑자전환에는 무려 23년이 걸린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전 세계에서 파운드리 업체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 대만, 중국, 한국 등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파운드리는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산업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위치한 대만의 면적은 3만5000㎢로 남한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중 산림이 70%로 산업체를 유치할 수 있는 토지 면적은 정말 작다. 작은 내수 시장, 부족한 인력 때문에 여러 가지 산업을 시도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처럼 자동차, 화공, 석유화학, 우주항공, 국방, 조선, 메모리 반도체, 건설, 토목 등을 성장시키지 못했다.
대만이 택한 건 파운드리 산업과 반도체 설계업(팹리스)이다.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현재는 세계 반도체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 파운드리 하나로 대만은 한국, 일본 인당 국민소득을 추월했다.
이제 TSMC가 없으면 전 세계 전자, 인공지능(AI), 컴퓨터, 가전 산업이 괴멸한다. 엔비디아, AMD, 애플, 퀄컴, 미디어텍, 인텔, 브로드컴 등이 TSMC에 반도체 생산을 위탁한다. 이 회사가 없으면 ICT 산업이 괴멸돼 전 세계 산업의 30% 이상이 정지한다.
산업통상부는 민관 합동으로 4조5000억원을 투자해 40나노 반도체 파운드리를 세우겠다고 한다. 국내 팹리스 전용 물량을 할당하고 최소 주문물량·비용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대만에 의존한 40~90나노 파운드리를 국내에서 해결한다는 구상이다.
일각에서는 40나노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걱정한다. 하지만 40나노는 대개의 국방, 가전, 산업기기까지 부족하지 않은 공정이다. 팹리스 업체들이 32나노~2나노로 설계역량을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산업부는 이를 기반으로 한국 팹리스 산업 규모를 23억달러에서 10배 성장시킨다는 목표도 세웠다.
40나노 파운드리 산업 육성은 다른 연계 산업의 성장도 불러온다. 반도체 장비, 웨이퍼, 반도체 설계자산(IP), 후공정(OSAT) 등이다. 수십조원의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얘기다.
순수 파운드리 육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파운드리 고객은 팹리스다. TSMC의 경우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순수 파운드리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종합 반도체 회사(IDM)로 파운드리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설계, OSAT 사업까지 영위하고 있다. 일부 팹리스 업체들이 삼성 파운드리에 위탁생산을 꺼리는 이유기도 하다.
40나노는 가장 큰 경쟁자가 중국 파운드리 SMIC일 것이다. 초기에는 중국의 엄청난 덤핑으로 경제성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수십년간의 적자 상황을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협업으로 잘 이겨내야 한다. 팹리스 육성과 더불어 반도체 설계자산(IP) 생태계 확보에도 힘써야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뒤늦게라도 레거시 파운드리의 중요성을 인식해 투자에 나서는 건 다행이다.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메모리의 3배에 달한다. 이번 투자는 정부의 세계 반도체 2강 도약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 훗날 KSMC(Korea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가 세계 1위 파운드리로 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이효승 한국시스템반도체협동조합 이사장·네오와인 대표 godinus@neow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