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대학 입시철이 되면 대한민국의 영어 시험은 어김없이 논란의 중심에 선다. 시험이 끝난 뒤 난이도를 두고 벌어지는 소모적 공방, 공교육 범위를 벗어났다는 지적, 그리고 결과 발표 이후에야 드러나는 제도적 허점들은 이제 낯설지 않다. 영어는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한 과목이지만, 입시에서만큼은 여전히 학생을 줄 세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수능과 모의고사, 학교 내신으로 이어지는 영어 평가 체계는 과연 학습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불신과 불안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굳어졌는가. 대한민국 영어 입시제도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입시 영어의 문제를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려 한다.

1.수능 영어의 혼란, 입시제도 구조적 한계 노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영역은 시험 직후부터 적잖은 논란을 낳고 있다. 난이도 체감의 급격한 변화, EBS 연계의 형식화, 그리고 절대평가 체제 아래에서의 변별력 문제까지, 이번 영어 시험은 단순한 출제 실패를 넘어 우리 입시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가장 큰 문제는 수험생들의 체감 난이도가 예년과 크게 엇갈렸다는 점이다. 절대평가라는 제도적 특성상 영어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이 이루어지면 등급 확보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시험에서는 일부 문항이 지나치게 복잡한 추론과 비정형적 어휘를 요구하며, '기본적인 영어 능력 평가'라는 취지와 괴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절대평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필수적인 난이도 조절이 여전히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BS 연계 정책 또한 형식적 수준에 머물렀다. 지문 주제나 소재만을 차용한 채 실제 문항은 변형을 거듭하면서, 연계 교재를 충실히 학습한 학생들조차 체감 혜택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는 공교육 중심의 평가라는 수능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결국 사교육 의존을 부추기는 역설로 이어진다. 연계율의 수치만 유지할 것이 아니라, 연계의 '질'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영어 절대평가가 입시 전반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상위권 대학들이 수시와 정시에서 영어 등급을 사실상 변별 요소로 활용하면서, 절대평가임에도 불구하고 1등급과 2등급 사이에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영어가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과목'이 아니라 '또 하나의 경쟁 과목'으로 기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이다.
결국 이번 논란은 출제진의 일시적 판단 오류라기보다, 제도 설계와 운영 간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결과다. 절대평가를 유지할 것이라면 그에 걸맞은 난이도 기준과 활용 원칙이 명확해야 하고, 대학 역시 이에 부합하는 전형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평가는 이름만 남은 채 수험생에게 혼란과 불신만을 안겨줄 뿐이다.
수능 영어는 더 이상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복되는 논란은 결국 피해가 수험생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교육 당국과 대학은 직시해야 한다. 입시제도의 신뢰 회복은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평가에서 출발한다. 이번 2026학년도 수능 영어에 대한 성찰이 또 한 번의 '유감 표명'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2.고교 영어 내신, 평가를 위한 시험인가 선별을 위한 시험인가
고등학교 영어 내신시험을 둘러싼 불만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수업을 충실히 들어도 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교사는 “변별력을 요구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갈등의 중심에는 고교 영어 내신의 출제 방식에 있으며, 이는 현행 대입 중심 교육구조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출제 방식이 수업의 본질보다 '선별'을 우선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학교에서 영어 내신은 교과서 내용 이해보다는 지나치게 세밀한 문장 해석, 복잡한 문법 변형, 지엽적인 어휘 의미를 묻는 문제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학생의 종합적 언어 능력을 평가하기보다는 실수 여부를 가려내는 시험에 가깝다. 그 결과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틀리지 않는 기술로 전락하고 있다.
서술형 문항의 운영 또한 문제다. 취지와 달리 서술형은 사고력이나 표현력을 평가하기보다는 정답 문구 암기 여부를 가리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채점의 공정성을 이유로 답안을 지나치게 제한하다 보니, 학생들은 스스로 문장을 구성하기보다 '교사가 원하는 표현'을 외우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는 서술형 평가의 교육적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
학교 간, 교사 간 출제 방식의 격차도 심각하다. 동일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도 어떤 학교에서는 비교적 평이한 독해 중심 시험을 치르고, 다른 학교에서는 고난도 문법·변형 문제로 변별을 강화한다. 내신 성적이 대입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이러한 편차는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신이 학생의 학업 성취를 보여주는 지표라기보다, 학교 선택에 따른 운의 요소로 인식되는 이유다.
이 모든 문제의 배경에는 대입 제도가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과 교과전형에서 내신의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학교는 변별력 확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출제는 교육과정의 충실한 구현보다는 '등급 나누기'에 맞춰지고, 영어 내신은 점점 더 난해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 고교 영어 내신은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험은 학생을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학습의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인가. 출제 방식은 수업과 평가의 일치를 최우선에 두고, 핵심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변별력은 문항의 난이도가 아니라 평가의 다양성과 누적된 학습 과정 속에서 확보되어야 한다.
고교 영어 내신의 신뢰 회복은 곧 공교육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진다. 출제 방식에 대한 성찰과 제도적 보완 없이는, 영어 내신은 계속해서 불신과 부담의 대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어떻게 틀리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배웠는가'를 묻는 시험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3.중·고 영어의 단절, 학습 격차를 키우는 구조적 문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순간, 많은 학생들이 영어 앞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분명 중학교 내내 영어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들조차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기대 이하의 점수를 받아 들고 당황한다. 이는 개인의 노력 부족 문제가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 영어 수준 차이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중학교 영어는 의사소통 중심의 기초 능력 함양을 목표로 한다. 어휘와 문법 역시 일상적 맥락 속에서 비교적 단순하게 제시된다. 반면 고등학교 영어는 추상적 주제의 긴 지문, 복합적 문장 구조, 미묘한 의미 차이를 묻는 문제로 급격히 난도가 상승한다. 이 과정에서 학습의 연속성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학생들은 '단계적 심화'가 아닌 '난이도의 도약'을 경험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수준 격차가 학생 간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는 데 있다.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통해 고교 영어를 미리 접한 학생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하는 반면, 공교육 과정에 충실했던 학생들은 출발선부터 뒤처진다. 이는 공교육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중학교 영어 수업을 성실히 이수하는 것이 고교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낳는다.
교실 현장의 부담도 크다. 고등학교 교사는 제한된 수업 시간 안에 기초를 보완하면서 동시에 고난도 내용을 다뤄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그 결과 수업은 상위권 학생 위주로 흘러가거나, 반대로 전체 수준을 고려해 난도를 낮출 경우 입시 대비에 대한 불안이 커진다. 어느 쪽이든 수업의 효율과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평가 방식 또한 이러한 단절을 심화시킨다. 중학교에서는 수행평가와 과정 중심 평가가 강조되는 반면, 고등학교에서는 지필평가와 변별 중심의 시험이 지배적이다. 평가의 성격이 급변하면서 학생들은 영어 실력 자체보다 시험 적응 능력에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중·고 영어 교육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교육과정은 형식적 연계가 아니라 실제 수업과 평가 수준에서의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고등학교 영어는 중학교에서 다진 기초 위에 자연스럽게 심화되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중학교 역시 고교 학습을 염두에 둔 핵심 역량을 보다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영어 수준의 격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잇는 다리가 부실한 한, 학생들의 불안과 학습 격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학교급 간 단절이 아닌 연계를 중심에 둔 영어 교육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4.수능 영어 출제위원, '비공개'라는 이름의 책임 공백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영역은 해마다 공정성과 적정 난이도를 둘러싼 논란을 반복하고 있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너무 쉬웠다”거나 “지나치게 어려웠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특정 유형이나 특정 주제의 문항이 과도하게 출제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에는 수능 영어 출제위원 구성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우선 출제위원 풀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출제 보안이라는 명분 아래, 소수의 인원이 단기간에 문항을 설계하다 보니 다양한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 고등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평가 전문가, 교육과정 연구자 간의 균형 있는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특정 배경의 인력에 의존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제위원의 전문성 구성 또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수능 영어는 단순한 언어 시험이 아니라 교육과정, 평가 이론, 대입 제도 전반과 긴밀히 연결된 시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제 과정에서 언어학적 타당성이나 문항 통계 분석, 학습자 수준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난이도 조절 실패가 반복되는 것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집단 구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심각하다. 출제위원 구성과 운영 전반이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되면서, 문제 발생 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물론 출제 보안은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제도적 투명성마저 차단하는 방식은 공적 시험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뿐이다. 결과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이 축적되지 않는다면 같은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절대평가라는 영어 영역의 특성 역시 출제위원 구성 문제와 맞물려 있다. 절대평가는 안정적인 난이도 유지와 일관된 기준이 핵심이지만, 매년 출제 기조가 미묘하게 흔들리는 현실은 출제진 내부에서 합의된 철학과 기준이 충분히 공유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위원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구성과 운영 방식의 문제다.
이제는 출제위원을 '비밀리에 모인 전문가 집단'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관리·지원해야 할 공적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한다. 장기적인 출제 인력 풀을 구축하고, 현장 교사와 평가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며, 사후 검증과 성찰이 가능한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투명성과 보안은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설계되어야 할 원칙이다.
수능 영어의 신뢰는 출제위원 한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그들을 구성하는 제도의 성숙도에서 나온다. 반복되는 논란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 출제위원 구성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는, 수능 영어는 계속해서 공정성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5.영어 어휘 주석의 기준, 왜 시험마다 달라지는가
수능과 모의고사, 그리고 학교 내신시험에서 영어 어휘 주석을 둘러싼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 어떤 시험에서는 낯선 단어에 친절한 주석이 달리는 반면, 다른 시험에서는 핵심 이해를 좌우하는 어휘가 아무 설명 없이 등장한다. 이처럼 주석 기준이 시험마다, 출제 주체마다 달라지는 현실은 수험생에게 불필요한 혼란과 불신을 안겨주고 있다.
어휘 주석은 단순한 편의 장치가 아니다. 이는 문항이 평가하고자 하는 능력이 어휘력 자체인지, 아니면 독해력과 추론 능력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럼에도 수능에서는 “고교 교육과정 범위”라는 모호한 원칙만 제시될 뿐, 어떤 수준의 어휘까지 무주석으로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보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시험이 끝날 때마다 특정 단어의 주석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반복된다.
모의고사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교육청 모의고사와 사설 모의고사는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며, 심지어 같은 교육청 시험이라도 회차에 따라 주석 수준이 달라진다. 일부 모의고사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석을 최소화하고, 다른 시험은 과도할 정도로 주석을 제공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모의고사의 본래 목적, 즉 수능 대비를 위한 기준 제시 기능을 약화시킨다.
학교 내신시험의 출제에도 모의고사나 수능시험과 마찬가지 문제를 공유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어휘 수준'에 대한 공적 기준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 어떤 단어가 고교 필수 어휘인지, 어떤 경우에 주석이 필요하며, 주석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출제자는 자의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어휘 주석은 평가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또 하나의 변별 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이제는 어휘 주석을 출제자의 재량이 아닌 제도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수능, 모의고사, 내신 전반에 걸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어휘 등급 기준과 주석 원칙을 마련하고, 시험의 목적에 따라 예외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평가의 공정성은 난이도 조절뿐 아니라, 시험 조건의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어휘 주석의 모호함은 영어 실력을 평가하기보다, 시험의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을 시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떤 시험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제는 '어떤 단어를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평가하려는 시험인가'를 분명히 해야 할 때다.
황길진 AllPass대입영어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