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중국 국빈 방문은 외교 일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동안 좁아졌던 한·중 교류의 문을 다시 열고, 경제·기술 협력을 '관리'가 아니라 '설계'의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방중을 계기로 한·중 벤처·스타트업 교류가 민·관 차원에서 재개되고 확장되길 기대한다는 문제의식은, 지금의 글로벌 저성장 국면에서 더욱 절실하다.
필자는 중국 현장에서 19년째 한국과 중국의 자본·기술·시장을 잇는 벤처 투자 일을 해왔다. 현장에서 확인한 현실은 명확하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와 정부 주도 정책, 그리고 국유펀드·보조금 등 정책·자본의 동원 능력을 바탕으로 혁신창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민간 역량을 빠르게 결집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창업 허브도 뚜렷이 분화돼 있다.
베이징은 인공지능(AI)·딥테크, 선전은 제조·로봇, 상하이는 핀테크·바이오, 항저우는 플랫폼(알리바바) 생태계 기반 혁신이 각각 강점을 형성하며, 도시별로 '기술-산업-자본'의 결합 방식이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더욱이 스타트업 생태계 성장률(2025, StartupBlink)에서 중국이 45.9%로 제시되고, 유니콘도 151개(CB Insights 기준)로 세계 2위 수준이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중국 시장은 한국 벤처에게 '피하고 싶은 변수'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 확장을 위해 '준비해서 들어가야 할 확장판'이다.
이번 방중과 함께 열린 한·중 벤처스타트업 서밋의 핵심 주제는 '한·중 창업생태계, 연결을 넘어 공동 성장'이다. 양국의 스타트업과 투자자, 중국 주요 테크기업 등 300여 명이 참여하고, 한·중 스타트업과의 대화와 투자 컨퍼런스(글로벌펀드 체결식 포함), 비즈니스 밋업 등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교류를 '행사'가 아니라 '프로세스'로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의 과제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한국의 딥테크 인프라(연구역량과 제조 품질, 그리고 투명한 자본시장 규율)을 기준점으로 삼아 '기술검증-파일럿-양산'까지 이어지는 한·중 공동 테스트베드와 펀드 설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IP·데이터·보안·컴플라이언스의 룰을 사전에 합의해 “한국과 협력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함께 충족한다”는 신뢰를 중국 현장에 심어야 한다.
셋째, 베이징·선전·상하이·항저우 등 허브별 강점을 활용해 AI, 제조·로봇, 바이오 등 분야별로 맞춤형 진출 트랙을 공식화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공동 성장'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도다. 공동 연구개발(R&D)은 성과·권리·리스크를 계약서에 먼저 박아야 하고, 합작 생산은 공급망 투명성과 품질 추적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 자본시장이 가진 공시와 거버넌스의 강점을 살려, 한국 스타트업이 중국에서 매출을 키우되 성장자금은 한국에서 조달하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 수 있다.
중국과의 협력은 의존이 아니라 '분업과 표준'의 문제다. 중국이 혁신창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민간 역량을 결집하듯, 한국도 벤처 30년의 성과를 발판으로 '국가 창업 시대'로 대전환해야 한다. 이번 국빈 방문과 서밋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교류가 확산돼, 양국이 공동으로 직면한 저성장 문제를 벤처·스타트업이 해결하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미래를 기대한다.
호경식 한국투자파트너스 중국법인장 hudson@kipvc.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