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6'에서 인공지능(AI)은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모든 곳에, 모두를 위해' 있었다. AI는 로봇과 제조, 모빌리티, 헬스케어, 에너지, 리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물리 세계와 결합하며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AI는 더 이상 화면 속 기술이 아니라, 판단하고 움직이며 책임까지 요구받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그 전환의 현장에서 K스타트업의 존재감도 분명했다. 스타트업 중심 공간인 유레카 파크는 사실상 한국 스타트업의 무대였다. CES에 참가한 한국 기업 853개 가운데 스타트업만 458개로, 스타트업 참가 국가 중 단연 1위였다. CES 혁신상을 받은 기업 347개 중 150개를 한국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차지했다. 기술력과 규모 면에서 한국 스타트업은 이미 CES의 주요 플레이어다. 주최기관인 CTA도 복잡한 AI 솔루션을 물리적 현실로 구현해내는 한국 혁신가들의 실행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첫째는 기술을 넘어 시장까지 확장되는 스토리텔링 역량이다. 바이어들은 기술적 데모(Demo)를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어떤 비용을 줄이고 어떤 책임 구조를 해결하는지를 보고 싶어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기술설명서'는 뛰어나지만, 산업시스템 안에서의 작동방식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혁신상(Awards)이 실제 계약과 매출(Orders)로 이어지려면 이 지점을 짚어야 한다.
시장 공략에 있어 가치지향적 접근도 중요하다. 이번 CES에서 소비자 가전과 헬스케어 분야가 강조한 키워드는 효율성보다 지속가능성, 건강하고 안전한 삶이었다. AI는 더 빠른 기계가 아니라 에너지 효율과 돌봄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비되고 있다. 스타트업도 이러한 가치를 언어에 담아야 한다. 가치가 구매의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글로벌 경쟁 구도에 맞는 특성화 전략이다. 중국은 하드웨어·로봇에서 속도·가격 경쟁력으로 앞서려 한다. 미국은 AI 모델보다 작동 기준·책임·인증 같은 '보이지 않는 인프라'로 규칙을 정하고 시장을 장악하려 한다.
이 구도 속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기회는 분명해진다. 제조 역량, 공정 경험, 하드웨어 이해, 현장 데이터는 한국 기업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강점이다. 플랫폼을 장악하지 않더라도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부품과 모듈, 신뢰 가능한 기술을 공급하는 전략은 충분히 유효하다.
여기서 중요한 해법이 대기업과의 연계다. 스타트업이 삼성·LG 같은 대기업과 납품이나 제휴 실적을 쌓는 순간, 기술은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구매 가능한 솔루션'으로 바뀐다. 이는 단지 상생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 진입을 위한 '현실적' 전략이다.
정부 정책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이제 목표는 스타트업을 전시장에 보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전시 지원을 넘어 인증과 표준 대응 등 글로벌 시장까지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스타트업 전시도 '코리아' 브랜드를 인식시키되 주제별로 묶어 생태계와 기술의 상호보완성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 대기업-스타트업-해외 시장을 연결하는 중개 역할 역시 중요하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투자유치 환경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벤처캠퍼스(SVC) 개소와 같이 최근 강화되고 있는 정부의 창업지원 정책에 거는 기대도 크다.
CES 2026은 우리 스타트업에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시장이 원하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술 보여주기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우리 스타트업의 기술력은 이미 강하다. K스타트업의 갈 길은 시장을 연결하고 설득하는 전략에 달려 있다.
조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 jhcho@kos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