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영화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는 헬리콥터 조종석에 앉아 전화기를 든다. “조종법이 필요해요.” 몇 초 후 그녀의 뇌에 프로그램이 다운로드되고, 능숙하게 조종간을 잡는다. 25년이 지난 지금, 이 장면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2024년 1월, 뉴럴링크의 첫 번째 임상시험 환자 놀랜드 아보는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였다. 8년간 전신마비 상태였던 그는 체스를 두고, 게임을 하고, 이메일을 보낸다. 영국에서는 환자가 수술 몇 시간 만에 생각으로 컴퓨터를 제어했다. 캐나다와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2026년에는 대량 생산이 목표다.
현재 뉴럴링크는 뇌의 신호를 '읽는' 기술이다. 운동 피질에 심어진 1024개의 전극이 “오른쪽으로 가라”는 의도를 전기 신호로 읽어 컴퓨터에 전달한다. 역방향, 즉 컴퓨터의 정보를 뇌에 '쓰는' 것은 아직 원시적 수준이다. 시각 피질을 자극해 빛의 점을 보여주는 정도다. 그러나 기술의 방향은 분명하다. 읽기가 정교해지면 쓰기도 따라온다. 일론 머스크는 궁극적으로 전두엽과 변연계까지 연결해 복잡한 의사를 말 없이 전달하는 '진정한 텔레파시'를 목표로 한다.
다른 그림도 봐야 한다. 스마트폰 이후 인공지능(AI) 활용의 최적 디바이스를 찾는 경쟁이 치열하다. 스마트 안경, 비전 프로, 각종 AI 핀과 웨어러블 기기들. 그러나 어느 것도 스마트폰을 대체할 결정적 해답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외부 장치는 인간의 감각기관을 거쳐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조작해야 한다. 병목이 존재하는 한 정보 전달의 한계가 있다.
궁극적 해답은 병목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뇌와 AI를 직접 연결하는 것이다. 뉴럴링크가 치료 목적을 넘어 범용 인터페이스로 발전한다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를 갖게 된다. 방대한 AI의 지식을 실시간으로 활용하는 입출력 장치. 검색하고 타이핑하는 시간 없이 생각만으로 정보에 접근하고, 복잡한 분석 결과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세상이다.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뇌에는 860억개의 뉴런이 있고, 지식이 저장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컴퓨터처럼 파일을 복사해 붙여넣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100년 전 한스 베르거가 희미한 뇌파를 처음 기록했을 때, 오늘날의 BCI를 상상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한국의 준비 상태다. 미국은 뉴럴링크 외에도 브레인게이트, 싱크론 등 민간 기업들이 경쟁하고, 연방정부의 BRAIN 이니셔티브가 연간 수억달러를 투입한다. 중국은 뇌과학 연구를 국가 전략으로 삼아 2030년까지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10년간 10억유로를 투자했다. 반면 한국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분야에 체계적인 중장기 투자 계획이 부재하다. 반도체, 배터리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이 다음 세대의 핵심 인터페이스 기술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다.
필요한 것은 BCI 분야의 국가 로드맵과 예산 기획이다. 기초 뇌과학 연구, 의료기기 임상시험 인프라, 관련 규제 프레임워크를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10년 후 뇌가 AI의 인터페이스가 되는 시대에, 한국이 기술 소비국이 아닌 선도국이 되려면 지금 투자해야 한다.
뉴럴링크 기술 그 자체에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마비 환자에게 자유를 줄 수도 있고, 멀쩡한 사람의 사고의 자유를 빼앗는데 악용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이고, 응용 가치는 무궁 무진하다.
스마트폰이 손 안의 컴퓨터가 됐듯, 뇌가 AI의 인터페이스가 되는 시대가 온다. 그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기술과 예산, 그리고 윤리적 준비를 함께 갖추지 않으면, 문이 열렸을 때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채 그 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