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차 SFS포럼] 빅테크·은행 '기능 경쟁' 본격화…“역할 재정의 시급”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 10차 회의가 26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렸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 10차 회의가 26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렸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조윤제 연세대 특임교수를 좌장으로 열린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토론 세션에서는 디지털 전환 속 전통금융 역할 재정의, 빅테크·핀테크와의 공존 모델, 생산적 금융의 기준, 규제 재설계 필요성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참석자들은 단순히 은행만의 위기라기보다 금융산업 구조가 바뀌는 변곡점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종섭 서울대 교수는 “디지털 금융 전환 흐름 속에서 학계는 전통 금융과 핀테크가 어떤 방식으로 상생·공존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며 “전통 금융이 가장 잘하는 영역은 유형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제공하는 것이고, 핀테크, 특히 빅테크는 데이터를 담보(data as collateral)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전통 제조업처럼 유형 자산을 많이 보유한 산업에 대해서는 전통 금융기관이 신용 창출을 담당하는 것이 여전히 유리하며, 이는 경기 순환에 민감하게 작동한다”며 “반면 핀테크나 빅테크 기반 금융은 거래 내역, 사용자 행동 등 디지털 정보를 활용한 여신 심사로 경기 사이클에 덜 민감한 금융 공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각자의 장단점을 조화롭게 융합한 금융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신산업 구조에서는 전통 금융과 테크 기반 금융의 접점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금융 산업 전반에서 유형 자산 중심의 집행력과 무형 정보 중심의 확장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배분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금융 환경을 고려해 규제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종규 KB금융그룹 고문은 “최근 일본 3대 은행이 ROE 11.5~12% 달성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는데, 국내 은행은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여전히 자본 창출 역량이 뒤떨어진다”며 “생산적 금융의 확대를 위해서도 수익창출력 향상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고문은 “증권과 은행 간 업무 경계가 완화되고 머니무브가 진행되는 새로운 상황에서 동일 행위 동일 규제 원칙으로 시스템 위험 발생에 대비하여 자본규제를 비롯한 은행과 증권의 규제 체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전통적인 예대 차익 모델에서 자산운용 쪽으로 은행 기능이 변화되는 추세에 맞추어 선의의 경쟁을 통하여 전문성을 향상하고 고객의 선택 폭을 넓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일례로 은행이 원금보장형 퇴직연금 운용 시 일률적 규제를 완화하여 은행 판단과 운용 자율성을 확대하여 주거나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 증권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윤 고문은 또 “은행이 가진 신용 창출 기능과 신뢰를 디지털자산 영역에 접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기존 금융회사를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가치가 있으며, AI 투자 등 새로운 환경에 맞춘 노동시장 유연화 등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관호 고려대학교 교수는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과거 은행이 독점하던 결제 서비스 등에 비은행 금융기관이 진입하면서 은행의 입지가 위축되고 있음에도, 규제 체계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머물러 있다”면서 “은행이 신사업 영역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다만 신 교수는 은행이 예금자 보호 제도와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기능을 통해 공적 보호를 받는 만큼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은 “가상자산의 거래 비용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반면, 역설적으로 가상자산 거래소는 중앙집중형 구조로 수렴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신뢰의 문제로 귀결되며, 앞으로는 '누가 신뢰를 부여하는가'가 금융 시스템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금융사 역사상 대부분의 은행과 증권사가 실제로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기반으로 보호받아 왔다”며 “현재 예금보호 한도인 1억원이 과연 충분한지, 투자자 보호 수준이 적절한지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은행과 증권이 보유한 신뢰 기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자금 흐름과 운용 방식에 대한 규제를 새로 설계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안수현 한국외대 교수는 수신 경쟁과 관련해서 “증권사에 기업어음(CP) 등 기업금융 업무를 확대하고, 원금 보장형 투자 수단 등 새로운 상품·채널이 등장하는 흐름이 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증권사가 은행 대비 규제 수위가 상대적으로 약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규제 상세 내용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재수 간사는 은행의 시장 존재감이 과거 대비 약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 간사는 “단기금융시장에서 안전성 규제가 강화하면서 은행이 시장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LCR(유동성비율규제) 등 각종 규제가 금융위기 이후 강하게 도입되며, 머니마켓 등에서 은행의 역할이 사실상 축소됐다”고 짚었다.

이어 유 간사는 “은행의 수익성이나 건전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발전과 재정지배 현상(국채발행 증가에 따른 국채 관리가 시장 우선 현안인 상황) 등으로 금융시장 구조가 질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에서 은행의 역할을 어떻게 강화할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생산적 금융'의 방향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종원 KDI 초빙연구위원은 “AI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처럼 사전에 정의된 특정 산업에 자금을 배분하는 것이 단지 생산적 금융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자금의 미래 성장성과 위험을 어떻게 정교하게 살펴 대출이든 투자든 생산적인 영역으로 자금이 흘러가게 만드는 설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은행은 대출 상품의 성격상 본질적으로 위험 감수가 제한되고, 위험 자본 측면에서도 여러 한계가 있다”며 “직접금융과 간접금융, 자본시장과 은행을 아우르는 전체 구조 속에서 균형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수현 교수는 “생산적 금융은 규제 이슈를 피해 가면서도 은행이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열어준 측면이 있다”며 “특히 금산분리 때문에 그동안 어려웠던 영역을 별도 기구 등을 통해 우회해,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한 만큼 성과에 따라 향후 규제 패러다임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 방안도 모색됐다. 윤종원 연구위원은 “금융 심화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직접금융이 위험 흡수능력이 뛰어나 성장과 혁신에 더 친화적”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대출 등 간접금융 의존도가 높고 대출 등에 대해서는 이자 비용에 대한 세제상 우대 등 차이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이어 윤 위원은 “기능별로 구분된 현 체제에서 양쪽 규제에 차익거래(arbitrage)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안수현 교수는 “해외에서는 지주 내에 은행이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왜 한국은 대부분 지주 안에 은행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며 “자본 규제 자체는 같이 적용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 경쟁 구도는 지주 내부에서 플랫폼·IT 역량을 결합한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짚었다. 이어 안 교수는 “은행업만 떼어놓고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금융 플랫폼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 디지털 전환 사례도 제시됐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핀테크 기업 피겨(Figure)가 부동산 대출과 신용대출을 토큰화해 개인이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을 선보이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며 “사실상 은행이 수행하던 금융 중개 기능을 개인이 수행하는 구조로, 이와 유사한 플랫폼이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미국 상업은행과 IB(투자은행)들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대출 중개 중심의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 디지털 플랫폼 회사와 자산관리 분야로 빠르게 전환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며 “사물인터넷(IoT) 등 기술 접목은 물론, JP모건처럼 지급결제 인프라를 재정비해 기존 비용 구조를 혁신하려는 전략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상업은행이 자본시장 비즈니스를 확대하며 IB·CIB 모델을 도입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려는 흐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국내에서도 데이터 활용을 강화하고 싶지만, 금산분리나 망분리 규제로 인해 제약이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