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인사이트] 탄소중립 디스플레이의 도전과 응원

KETI 탄소중립 가스 적용 식각 증착장비. 〈사진 KETI 제공〉
KETI 탄소중립 가스 적용 식각 증착장비. 〈사진 KETI 제공〉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의 패권 경쟁이 백병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 주도권을 내준 뒤 차세대 시장에서 중국, 대만과 격돌 중인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은 이제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선 본질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바로 범용재에서 고객 맞춤형 특수재로의 전환이며, 그 중심에는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파고가 있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철저한 기업간거래(B2B) 구조다. 최근 애플, 메타 등 글로벌 대형 고객사들은 RE100(재생에너지 사용 100%)을 넘어 공급망 전체 탄소 배출 저감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반 구매층은 '제품 사용이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확신을 원한다. 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이 아닌 글로벌 시장 진입을 위한 최소 요건이 된 것이다.

물론 탄소중립 공정 도입은 단기적으로 원가 구조에 치명적일 수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 식각·세정 공정에 필수적인 가스들의 교체는 기술적 난도가 매우 높다. 현재 주력으로 사용되는 육불화황(SF6)의 온실효과지수(GWP)는 2만3500, 사불화탄소(CF4)는 6630에 달한다. 이를 GWP 150 이하 저온난화 가스로 대체하는 것은 단순히 가스통을 바꾸는 차원 문제가 아니다.

신규 가스 도입 시 식각 속도와 선택비가 달라지고, 기판 표면의 거칠기가 변하며, 분해 후 발생하는 부산물 제거 공정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한다. 심지어 장비 내부 오링(O-ring)이나 보호막 등 핵심 부품 내구성을 처음부터 다시 검증해야 하는 공정 대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야말로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다시 한번 기술장벽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다. 탄소중립 공정이라는 난제는 추격 국가들에 더욱 높은 진입장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제적으로 저탄소 공정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이는 원가 상승 요인이 아니라 경쟁국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견고한 기술적 요새가 될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산업통상부는 '탄소중립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을 통해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총 9352억원을 투입한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용 가스 및 공정 개발에만 8년간 2571억원의 국비를 집중 지원하며 신규 후보 가스 도출부터 시생산, 성능 검증에 이르는 전 주기를 관리하고 있다.

다만 연구실의 성과가 실제 양산라인에 안착하기까지는 정교한 스케일업 전략이 필수적이다. 대면적 장비에 신규 공정을 무작정 도입하기보다, 실험실과 파일럿 단계에서 꾸준히 공정 적합성을 확보하며 장비 데미지를 최소화하는 신중한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

이런 기술적 방법론을 완성하기 위해 현재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에서는 200×200㎜급 탄소중립 가스 적용 평가 전용 라인을 확보해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신규 가스와 핵심 부품을 실제 공정에 적용하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다음 단계로의 기술 레벨업을 위한 소중한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민·관·연의 밀착 협력이야말로 양산 리스크를 줄이고 초격차 기술을 완성할 핵심 열쇠다.

탄소중립은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에 있어 피할 수 없는 험난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자의 편이었다. 우리가 이 파고에 선제적이고 전략적으로 응전하여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디스플레이 양산 체계를 갖춘다면, 대한민국은 글로벌 특수재 시장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린 초격차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이제 탄소중립은 단순한 환경 보호나 규제 대응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패권을 결정짓는 신산업 경쟁력의 핵심 지표다. 저탄소 가스와 공정 솔루션을 선점한 우리 패널이 전 세계 프리미엄 시장을 주도하는 모습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연구기관의 실증 인프라, 그리고 기업의 도전정신이 하나로 뭉칠 때, 대한민국 디스플레이는 '지속가능한 기술 강국'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것이다.


한철종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디스플레이연구센터 센터장 cjhan@keti.re.kr

한철종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디스플레이연구센터 센터장. 〈사진 KETI 제공〉
한철종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디스플레이연구센터 센터장. 〈사진 KETI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