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전쟁에서 이길 비장의 무기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바탕으로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리운 이 거대한 작업은 국가의 운명과 전쟁의 판도가 달려있는 중대 과제였다. 원자폭탄의 원리는 대강 알려져 있었지만, 최강의 무기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여기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은밀한 마을로 이주해서 모든 것을 걸고 개발에 매달렸다.
2025년 미국 워싱턴DC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초대형 인공지능(AI) 국가 프로젝트인 제네시스 미션을 들고 나왔다. 연방 정부의 과학 역량과 민간 빅테크의 AI 기술을 통합해 과학·에너지·안보 전반의 난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AI기술을 구현하고자 AI판 맨해튼 프로젝트를 선언한 것이다. 과학적 발견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 미국의 기술 패권을 영구화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보유한 과학기술, 데이터와 민간기업의 AI, 국립연구소가 보유한 슈퍼컴퓨터 등을 한 플랫폼으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제네시스 미션의 전략 분야는 제조, 에너지, 기초과학, 생명공학, 신소재, 대체 광물, 핵융합, 양자컴퓨팅, 차세대 반도체, 핵 안보 등 20여개에 달한다. 주관 부처는 에너지부이지만 백악관과 다수의 연방 기구가 민간 빅테크 기업들과 협업하며, 오크리지·로스앨러모스 등 17개 국립연구소와 연계된 슈퍼컴퓨터·핵안보 인프라와 민간 AI기술을 결합해 미국 과학·안보 플랫폼을 구축한다. AI가 논문·실험데이터를 읽고, 스스로 가설을 세우며, 실험 계획을 짜고,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AI 공동 과학자'와 그것이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는 통합 인프라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민간 파트너에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AWS, IBM, 엔비디아, 인텔, AMD, 오픈AI, 앤트로픽, 팔란티어 등 20여개의 빅테크·반도체·클라우드 기업이 망라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이 새로운 체계는 특정 하드웨어나 클라우드에 종속되지 않도록 설계됐으면서도 단백질 접힘, 신소재, 핵융합, 기후, 지구과학 등 복잡한 과학 문제에 특화된 거대 모델과 AI 에이전트를 지향한다.
90일, 120일 등 기한을 정해놓고 단계별로 어떤 연방 정부 자산을 어떤 미션에 배정할지 로드맵도 제시돼 있다. 실험 설계와 시뮬레이션을 AI가 대규모로 자동화해 과학적 발견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1차 목표이며, 에너지 생산·저장·송배전 최적화, 원전·에너지 인프라 안전성 향상, 제조 공정 고도화 등에 AI를 적용해 비용 절감과 효율 향상을 노린다.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미국의 타국 의존을 줄이고 비교우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적지않게 드러난다.
제네시스 미션은 정부, 민간 할 것 없이 최고의 자원을 들이 부어서, 과학기술의 제반 분야에서 압도적 경쟁우위를 갖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 나라도 AI 3대 강국을 표방하면서 비슷한 지향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상시 문제 해결, 상시 지식 생산을 위한 AI기반 플랫폼을 민관협력으로 개발한다는데 차이가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정부가 천재들을 모아서 은밀히 시행한 프로젝트였다면, 제네시스 미션은 민간 빅테크와 정부 기관이 협업하는 전략의 공개 선언이다. 우리가 수 만 개의 GPU를 활용해 만들고 있는 소버린 AI가 완성되면, 어떤 문제를 푸는데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제네시스 미션은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최고의 인적자원과 강렬한 의지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