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퓨처로그] 100년 만기 회사채, 우리는 안될까?

이진호 전자신문 논설실장.
이진호 전자신문 논설실장.

정확히 1년 전 이 코너 연재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DOGE 같은 조직 안될까'란 글을 냈다. 미국 트럼프 내각의 정부효율부(DOGE) 같은 조직이 우리에겐 절대 불가능할까란 질문이었다.

1년이 지나 100년 만기 회사채 얘기로 다시 미국에 대한 일종의 부러움을 꺼내려 한다.

100년이 얼마나 긴 시간이란건 누구나 잘 안다. 단 1년만 해도 그 기세 좋던 DOGE도, 이를 이끌던 일론 머스크도 미 행정부 내 흔적이 사라질 정도로 긴 시간이다. 이 100배 해당하는 시간이니 얼마나 장대한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최근 100년 만기 회사채를 영국에서 성공리에 발행했다. 아무리 금융산업이 일찍 태생해 발전한 영국이라 하더라도 '센추리(Centry) 신용'은 흔치 않은 일이다.

100년 만기 회사채는 말 그대로 현재 가치로 채권을 판뒤 증서를 갖고 오면 100년 뒤 갚겠다는 것이다. 요즘 국제 상황으로 따지면, 100년은 국가의 주인이 바뀌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회사의 주인이 수십번은 족히 바뀔 시간이고, 결정적으로 회사가 살아남아 있을지 존속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100년 만기 파운드화 표시 구글 회사채가 런던 채권시장에서 9.5대 1이란 높은 경쟁률로 팔린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 가치의 돈을 맡기고, 100년간 5.7%의 금리만 보장 받더라도 기술 만큼은 100년 동안 존속을 넘어 더 왕성하게 뻗고, 성장할 것이란 굳은 믿음의 발로인 것이다.

구글은 이렇게 미국과 유럽에서 100년 만기를 포함한 채권 발행으로 긁어모은 320억달러(약 46조원)를 인공지능(AI)에 집중 투자한다. 제미나이를 포함해 안드로이드 생태계, 유튜브 등 AI 기술 맹주로서 기술 뿌리를 굳히는 작업이다.

이렇게 굵게 뿌리내린 AI 주도권이 적어도 22세기 초까지는 유지될 뿐 아니라, 더 발전할 것이란 믿음을 투자자에게 준 것이다.

영국의 100년 채권 매수자 또한 자신은 사라진 지구에서, 그 아들을 넘어 손자 쯤에 구글의 존속과 더 굳건해진 시장지배력을 누릴 것이란데 적극 베팅한 셈이다. 사실 글로벌 어느 금융투자 기관, 심지어 국가라 할지라도 이런 믿음을 줄수 있겠는가.

기술이란 이처럼 대를 넘어 발전하는 것이다. 이번 '100년 베팅'이 실제로는 '기술가치에 대한 초장기 신뢰'의 다른 말임을 세상은 알게 됐다.

물론, 이 100년 채권은 지금까지 기술주 초장기채권 기록으론 실패 확률이 높은 편이다. IBM·모토로라가 30년 전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까진 했지만, 앞으로 70년 뒤까지 살아있을지 불확실하다. 당시로선 시가총액·글로벌 시장 점유율 등에서 앞서 달리던 이들은 지금은 존재감이 거의 사라졌다.

아무리 '불기둥' 코스피라 할지라도 우리 기업들 속사정은 팍팍하다. AI 투자를 한다고는 하지만, 구글 하나만의 올해 AI 투자계획 규모인 1850억달러(약 270조원)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당장 그렇게 될 순 없겠지만, 기술에 대한 투자신뢰를 얻는 모습으로 우리 자본시장이 바뀌어야 한다. 100년 뒤 영속할 기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 만큼은 반드시 발전하고 번성할 것이란 믿음을 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 기업이 발행한 100년 채권도 나올 수 있다.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