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역사적 사실조차 의도적으로 왜곡·부정되는 '역사 부정'을 목격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홀로코스트나 5·18 민주화운동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와 직결된 사건들마저 정파적 이익이나 혐오의 논리에 의해 부정되곤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미디어를 통해 유포되는 역사부정은 교실까지 침투해 미래세대의 가치관을 흔들고 있다. 역사 부정은 단순한 '해석의 차이'나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토대인 '진실'과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교실로 유입된 역사 부정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고 교사들의 역사 수업을 어렵게 만든다. 역사가 부정될 때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울 기회를 잃게 되며, 이는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기르는 '민주시민 교육'으로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민주시민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개인을 의미한다. 역사는 다양한 주체의 기억이 얽힌 공간이다. 타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훈련은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주적 태도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된다. 역사교육은 다양한 사료를 탐구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민주시민의 역량을 기르는 도구다. 과거 인물의 선택과 그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현상을 다각도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역사는 하나의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기록과 해석을 대조하며 사실 여부를 가려내는 과정은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고, 허위 정보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길러준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토론하는 과정은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민주적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훈련이 되며, 이는 다원사회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공존하기 위한 민주시민의 역량이다.
오늘날 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근현대사 교육은 '민주주의, 평화, 인권'과 같은 시민적 가치와 직결된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것은 학생들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고 그 가치를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한국은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으며 복합적인 현대사를 형성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민주적 가치를 지켜왔다. 3·1운동, 4·19혁명, 1987년 민주화운동은 시대마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지향한 시민적 실천 사례다. 억압과 독재에 맞섰던 시민들의 용기를 배우며 학생들은 평화와 인권이 수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쟁취한 자산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성찰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책임감과 협력, 연대의 중요성을 체화하게 한다.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역사교육은 학교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역사교육은 사회의 공공영역과 연계돼 시민적 사유의 훈련의 장이 돼야 한다. 학교와 지역사회, 박물관, 기념관 등 다양한 사회적 자원 간의 연계가 필요하다. 학생들이 역사 현장을 방문하고 실제적인 탐구 활동에 참여할 때 역사적 지식은 살아있는 역량이 된다. 구체적인 지역의 역사와 생활 속 역사를 접하도록 시야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미래세대가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학교와 사회가 협력해 역사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의 참여와 성찰을 통해 유지되고 발전하는 과정이다. 그 핵심 동력은 미래의 민주시민이다. 학생들이 역사 속 시민으로 사유하고 미래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역사교육의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지원 대림대 명예교수·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hapihist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