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생성과 소멸] 〈15〉트럼프 대통령이 꿈꾸는 세상 (하)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

증기기관, 철도, 인터넷, 인공지능(AI) 등 과학기술은 산업과 시장을 키웠다. 일자리와 안전에 피해를 주기도 했지만 부작용을 통제해 성장을 이끌었다. 기업은 과학기술을 사업에 접목해 좋은 상품으로 고객의 삶을 돕고 임직원의 생활을 증진했다. 주식발행, 투자, 신용 공급을 통해 기업을 넘어 국가를 부유하게 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봉사활동 등 사회적 책임도 잊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기업의 임직원, 주주, 고객이거나 협업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정부 정책도 기업을 적극 활용한다. 산업진흥, 물가안정, 지방발전, 고용창출 등 많은 역할을 떠맡긴다. 기업이 산업을 고도화하고 저가에 상품을 공급하며 지방에 공장을 짓고 많은 임직원을 고용하게 요구한다. 기획, 영업, 재무, 법무, 인사, 평가 등 기업 운영방식을 국가혁신에 응용한다. 기업의 ESG까지 정부기관에 적용한다. 기업인이 장차관 등 요직에 등용되고 국회의원 등 선출직 당선도 자주 본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기업인 출신이다. 대운하사업은 좌절됐지만 서울시 도로교통시스템, 청계천 복원 등이 그의 공적이다.

2024년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가. 저격수의 총성이 하늘을 가르고 선거유세 중인 대통령 후보의 귀를 맞췄다. 그는 탁자 밑이나 뒤로 숨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주먹을 굳게 쥐며 승리를 외쳤다. 총알도 뚫지 못하고 겁조차 없는 그라면 위대한 미국을 만들 수 있다. 그게 당시 미국인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는 부동산사업에서 큰 성과를 이뤘던 기업가였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은 냉전시대, 세계화, 인터넷시대의 세계를 기획하고 주도했다. 국제질서에서 무엇이 정상이고 옳은지, 무엇이 비정상이고 틀린지 결정했다. 적성국을 제재하고 공격했고 동맹국을 줄 세워 이익을 나눴다. 유럽의 EU 통합과 중국의 성장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흔들었다. 미국을 약화시키고 피폐하게 만들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운영을 맡겼고 그는 기업의 오너처럼 국가를 경영한다. 세계가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옮음과 그름,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정하고 집행한다. 대법원의 관세무효판결에도 맞서 더 강력한 관세를 동원하고 AI 등 첨단무기를 앞세워 세계를 압박했다. 그가 쏟아내는 무지막지한 힘은 그간 국제질서가 미국을 맹주로 인정하면서 '눌러두었던 광기'일지 모른다.

철학자 미셀 푸코는 권력의 실제 행사방식을 분석한다. 범죄자에 대한 공개처벌을 피하고 구금을 통해 교화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순응하게 만든다. 질병의 범위를 확대해 격리와 치료 대상으로 만들면 멀쩡한 사람조차 통제할 수 있다. 국제질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국가의 선악을 나누고 악한 국가를 지정해 경고하고 처벌함으로써 그렇지 않은 국가를 순응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가.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그린란드 매각 요구에 더해 이란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이 과거 세계질서에서 순화해 왔던 국제 권력의 행사를 물리적 힘이 좌우하는 이전의 야만시대로 되돌렸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서 위대한 미국을 찾을 수 있을까. 세계가 수긍하고 함께 하는 '가치와 신뢰기반의 새 질서'를 만들 순 없는 걸까.

중국 초한지의 항우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유방에게 패했다. 유방이 잘나서가 아니다. 백성이 원치 않는 옛 시대로 돌아가려 했다. 봉건영주가 조세, 노역으로 백성을 착취하고 물건의 단위와 화폐가 달라 장사하기 힘들던 그 시대 말이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어떤가. 아버지와 형제를 몰아내고 황제가 됐다. 조상대대로 군대의 힘으로 군림했지만 법과 칼을 내려놓았다. 백성의 안락한 삶을 위해 '왕도정치'의 새 질서를 선택해 치적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과거에서 낡은 영광을 찾아선 안 된다. 기업처럼 매출, 이익 등 눈에 보이는 숫자만이 성과는 아니다. 설득과 양보를 통해 신뢰를 쌓고 상생의 국제질서를 새롭게 구축해야 미국이 우뚝 설 수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