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IT·전자기업 특허전쟁이 본격화되던 2008년, 한 지식재산(IP) 전문가가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8년 뒤 그는 글로벌 IP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정부, 기업, 로펌의 IP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커버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세림 클래리베이트(Clarivate) IP 부문 본부장 이야기다.
이 본부장은 세계 최대 규모 IP 비즈니스 기업 중 하나인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특허 개발과 매입, 라이선스, 소송, 신기술 연구·개발(R&D)까지 아우르는 IV 업무 특성 덕분에 그는 초창기부터 한국의 IP 정책 변화와 지식재산 금융 생태계 성장 흐름을 몸소 경험했다. 당시 한국 정부와 공공기관이 IV 모델을 참고해 IP 금융 활성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던 시기였던 만큼, 그는 “IP가 하나의 '자산 클래스'로 자리 잡아가는 역사적 전환기를 현장에서 경험한 특별한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글로벌 IP 서비스 강자인 CPA Global로 자리를 옮겨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대표 기업 IP 업무를 지원해왔다. 국내 연차료 관리기업인 마크프로 및 한림 IPS 인수 이후, 한국 시장 확장을 위한 전략 수립에도 직접 참여했다. 2020년 CPA Global이 세계적인 정보·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에 인수되면서 그는 현재까지 클래리베이트의 한국 IP 사업을 이끄는 핵심 인력으로 활약 중이다.
이 본부장은 지난 수년간 IP 커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25년 특허청이 '지식재산처'로 공식 승격된 일을 꼽았다.
“전 세계적으로 IP만을 총괄하는 독립 정부 기관을 둔 국가는 한국이 최초다. 이는 대한민국이 IP를 차세대 성장동력 그리고 기술 패권 경쟁 핵심으로 삼겠다는 강력한 국가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그는 지식재산처 출범이 한국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중대한 변화라 강조했다. “이제 한국 주요 산업의 경쟁력은 IP 전략의 질로 결정되는 시대다. 기업 혁신은 물론 국가의 기술 리더십도 IP 정책 방향성과 속도에 좌우될 것이다.”
최근 급격히 가속화되고 있는 인공지능(AI) 도입 흐름에 대해 그는 보다 신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클래리베이트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를 인용하며, IP 분야 AI 도입률은 지난 2년간 28%P(포인트) 상승해 85%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법률·IP처럼 오류에 민감한 규제 환경에서 매우 고무적인 변화다. 그러나 많은 조직이 여전히 공개 데이터 기반 범용 LLM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공개 데이터로 학습된 LLM은 부정확성, 편향, 할루시네이션 위험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 특허·상표처럼 단어 하나가 사업을 뒤흔드는 분야에서 이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클래리베이트는 정제된 독점 데이터와 전문가 검증 데이터세트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구축하며 정확도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클래리베이트가 MCP 기술을 도입해 고객이 자사 시스템과 클래리베이트 모델·데이터를 직접 연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AI 기능을 고객의 기존 워크플로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면 규정 준수나 품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위험과 비용을 모두 낮출 수 있다.”
AI 역할을 두고 그는 '보완'에 방점을 찍었다. “AI는 규제 환경에서 요구되는 인간 전문가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할 것이다. 특히 IP같이 고도의 전문성과 법적 리스크가 결부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는 클래리베이트가 독점 데이터, 깊은 도메인 전문성, 워크플로에 내재화된 솔루션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경쟁사와 명확히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클래리베이트는 앞으로 지속적인 AI 기반 제품·기능 파이프라인을 출시해 장기적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클래리베이트는 현재 전 세계 주요 혁신 기업의 90%, 글로벌 톱 브랜드 90%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 본부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클래리베이트는 책임 있는 AI, 검증된 데이터 기반 AI, 전문가 중심 AI라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IP 분야처럼 정확성이 생명인 환경에서는 이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끝으로 한국의 혁신가·기업·정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은 지금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IP 전략이 중요하다. 클래리베이트는 앞으로도 한국의 혁신과 성장의 여정을 함께하는 신뢰받는 파트너가 되겠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