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POSTECH)은 박성민 IT융합공학과·기계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융합대학원 교수, 기계공학과 홍성욱 박사 연구팀이 몸속에 삽입할 때는 단단하고, 몸 안에서 수분과 만나면 부드럽게 변하는 척수 신경 자극기를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은 흔히 생활 습관이나 유전 문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의학계에서는 '신경 불균형'이 근본 원인 중 하나라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약 대신 신경에 직접 전기 신호를 보내 몸의 조절 기능을 되살리는 '신경 조절1)' 치료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신경 조절' 치료 핵심은 신경과 밀착해 자극과 신호를 주고받는 신경 자극기다. 문제는 이 자극기가 삽입 과정에서는 좁은 척수 공간을 정확하게 통과할 만큼 단단해야 하고, 자리 잡은 이후에는 주변 신경 조직처럼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이라는 상반된 특성을 모두 만족해야 하는 모순이 이 분야의 가장 큰 난제로 꼽혀왔다.
연구팀은 물에 녹는 '희생층'을 활용한 가변 강성 구조를 적용해, 삽입 시에는 단단함을 유지하고 체내 수분을 만나면 수 분 내에 부드럽게 변하도록 설계했다. 딱딱한 알약 캡슐이 위에서 녹아 약 성분을 내보내는 것처럼, 이 장치도 환경에 반응해 스스로 형태를 바꾼다. 부드러워진 장치는 척수에 밀착된 상태로 신경 조직과 함께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전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개선했다.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저항이 변하면서 신호가 불안정할 수 있는 '고체 금속' 대신 '액체 금속'을 사용했다. 액체 금속은 형태가 변해도 전기적 특성이 거의 유지돼, 자유롭게 움직이는 환경에서 안정적인 신호 전달이 가능하다. 비용도 줄였다. 기존 신경 자극기는 고가의 반도체 공정과 금 소재를 사용해 제작 비용이 비싸지만, 연구팀의 기술은 액체 금속과 레이저 가공 공정을 적용해 제조 단가를 크게 낮췄다.

쥐의 척수에 장치를 부착해 교감신경을 조절한 결과, 혈압을 낮추고, 발바닥 통증 자극에 따른 감각 신호를 안정적으로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전기 자극'과 '신호 측정'을 동시에 수행하는 '양방향 신경 인터페이스'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 기술의 활용 범위는 넓다. 미주신경 자극을 통한 간질·우울증 치료, 척수 신경 자극을 활용한 고혈압 조절과 마비 재활, 경골 신경 자극을 이용한 과민성 방광 치료 등 약물 치료에 한계가 있거나 부작용이 우려되는 환자에게 새로운 옵션이 될 수 있다.
박성민 교수는 “기계적·전기적 성능과 의료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편의성을 동시에 갖춘 신경 자극기 기술”이라며, “만성 질환 치료를 위한 지능형 신경 조절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라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유망융합기술파이오니어사업, 이공분야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 교육부 박사과정연구장려금사업 중견연구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교육부의 국가연구소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네이처(Nature)' 파트너 저널이자 의공학 분야 학술지인 'npj 유연 전자소자(npj flexible electronics)' 온라인판에 소개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