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호르무즈 해협 사태 대응을 위한 결의안 채택에 나섰지만,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유엔 안보리는 7일(현지시간) 미국·걸프 국가들이 주도한 호르무즈 해협 관련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표결 결과는 찬성 11표, 반대 2표, 기권 2표로, 기권은 콜롬비아와 파키스탄이 행사했다.
이번 결의안은 당초 포함됐던 '필요한 모든 수단' 문구를 삭제하고, '방어적 성격의 노력 조율'로 수위를 낮춘 타협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택에 이르지 못하면서, 중동 긴장을 둘러싼 안보리 내 입장 차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의안은 의장국 바레인이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과 미국 등과 조율해 마련됐다. 호르무즈 해협 이용국들이 선박 호위 등 항행 안전을 위한 방어적 조치를 협력하도록 권고하고, 이란에 선박 공격과 항행 방해 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담수화 시설과 석유·가스 시설 등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도 요구했다.
초안 단계에서 반대 입장을 보였던 프랑스는 최종적으로 찬성으로 돌아섰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결의안이 특정 국가에 책임을 집중한 '편향된 문안'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표결 직후 바레인은 “안보리 신뢰도를 훼손하는 결과”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 자야니 바레인 외무장관은 “국제사회의 대응 없이도 국제 수로에 대한 위협이 용인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란과 중국·러시아를 동시에 겨냥했다. 마이크 왈츠 주유엔 미국 대사는 “이란 정권이 호르무즈 해협과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위협을 일삼는 정권의 편에 섰다”고 비판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충돌의 책임을 미국과 이스라엘에도 돌리며, 별도 대안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푸충 주유엔 중국 대사는 “결의안이 분쟁의 근본 원인과 전체 맥락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중단을 요구하는 동시에 이란에도 자제를 촉구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 역시 “근본적으로 잘못된 접근”이라며 “보다 균형 잡힌 결의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라며 환영했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 대사는 해당 결의안을 “사실상 미국이 주도한 문안”이라고 규정하며, 자국의 자위권을 부정하는 내용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표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설정한 이란과의 협상 시한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이뤄졌다. 다만 결의안 수위가 크게 완화된 점을 감안할 때, 설령 채택됐더라도 이번 전쟁 국면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은 제한적이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보리 결의안은 15개 이사국 가운데 9개국 이상 찬성과 함께,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모두의 거부권 미행사가 필요하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