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무형자산 기업 공시·투자 강화…韓 여전히 '공백 상태'

IP서비스업계, IP공시제 도입 지원 나서

지식재산 업계 전문가들이 지난해 6월 '한국형 지식재산(IP) 기업공시제도 도입 방안 모색 간담회' 개최 후 기념 촬영했다.
지식재산 업계 전문가들이 지난해 6월 '한국형 지식재산(IP) 기업공시제도 도입 방안 모색 간담회' 개최 후 기념 촬영했다.

일본이 기업 무형자산 공시와 투자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며 자본시장의 구조적 전환에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관련 제도와 공시 체계가 여전히 미비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 글로벌 투자 환경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은 최근 일본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코퍼레이트 거버넌스 코드(CGC) 개정 최종안을 도출했다. 이번 개정은 2025년 10월 '전문가 자문기구인 유식자 회의'를 통해 논의가 시작됐으며, 2026년 상반기 개정안이 사실상 확정 단계에 들어갔다. 현재는 공식 적용을 앞둔 상태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이를 전제로 기업과 투자자의 행동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번 개정 핵심은 단순한 지배구조 개선을 넘어 기업의 자본 배분 방식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무형자산, 그중에서도 지식재산과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확대를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금융당국은 기업이 설비와 연구개발, 지식재산 등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 계획과 실행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기존 재무 중심 공시에서 벗어나 기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투자자에게 설명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공시 체계를 진화시키는 조치로 평가된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는 무형자산, 특히 지식재산을 기업가치 핵심 요소로 보고 이를 공시와 투자 판단 중심에 반영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업 무형자산 관련 정보 공시가 강화되고 있으며, 유럽연합 역시 비재무정보공시지침(NFRD)과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통해 연구개발, 지식재산 등 무형자산 관련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은 이미 '유형자산 중심 평가'에서 '무형자산 중심 평가'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무형자산 공시와 투자를 제도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번 코드 개정을 통해 연구개발과 지식재산 등 무형자산은 단순한 보조적 요소가 아니라 기업가치 창출의 핵심 투자 대상으로 공식화됐다. 이는 '무형자산 공시'와 '무형자산 투자'가 하나의 정책 흐름으로 통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기업의 오랜 문제로 지적돼 온 '현금 과다 보유' 구조를 개선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기업이 내부 유보금을 축적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이를 성장 투자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무형자산이 있다. 투자자 역시 기업 자본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어 기업들은 전략과 자본 배분을 동시에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면에 한국 상황은 대조적이다. ESG 공시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무형자산, 특히 지식재산에 대한 투자와 성과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제도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기업 연구개발 비용은 공시되지만 그 결과로 창출되는 특허, 브랜드, 데이터 자산 등이 기업가치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는 투자자가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글로벌 투자자 관점에서 기업의 장기 성장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 격차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는 오는 21일 업종별 대표단 회의를 개최하고 한국형 IP 무형자산 공시제도 도입을 금융당국에 공식 촉구할 예정이다. 아울러 협회는 관련 IP 서비스 기업 간 협력을 통해 제도의 안정적인 도입과 시장 정착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허재관 연구개발사업화정책연구회장은 “일본이 무형자산을 '투자 대상'이자 '공시 대상'으로 동시에 끌어올린 것처럼 한국 역시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한 무형자산을 기업가치 평가 체계에 반영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자본시장 신뢰 회복과 생산적 투자 유도라는 정책 방향과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IP 서비스 산업이 공시·평가·분석의 인프라 역할를 수행할 때 제도 실효성과 시장 수용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