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뇌질환 치료의 새로운 길, 글림프계·신경계 조절 기술에 주목해야

김형준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과학연구부장
김형준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과학연구부장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 인구 증가와 1인 가구 확산 속에서 치매와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위기로 떠오르고 있다. 치매 환자는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고, 관련 사회적 비용은 수십조원에 이른다. 향후 그 부담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문제는 기존 치료법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레켐비 등 신약은 알츠하이머병 환자 질병 진행을 늦추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높은 비용과 뇌 미세출혈 및 부종 등 부작용이 따른다. 보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뇌 글림프 시스템'이다. 글림프계는 뇌척수액 흐름을 통해 뇌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시스템으로 제안된 가설이다. 글림프계 기능이 저하되면 아밀로이드 베타와 같은 독성 단백질이 축적돼 퇴행성 뇌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동물실험과 일부 임상 연구에서 글림프계 기능 저하가 알츠하이머병 병리와 연관된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즉, 뇌질환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신경계 뿐 아니라 뇌 척수액, 림프계 등 신경유액 흐름도 함께 조절해야 한다는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뇌를 단순한 신경 회로가 아니라 유체 흐름과 결합된 동적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공동으로 '뇌 글림프계·신경계 조절 전략연구단'을 구성했다. 한의학연구원은 수천년간 축적된 경혈자극과 침술을 활용해 말초 자극으로 뇌 글림프계, 신경계를 조절하는 접근을 담당한다. KIST는 초음파를 이용한 비침습적 뇌심부 자극 기술로 보다 정밀하게 뇌 내부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퇴행성 뇌질환에 대응하고자 글림프계·신경계 융합 연구를 전략기술로서 채택하고, 의과학 분야 글로벌 이니셔티브 확보와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해 지속 투자하고 있다.

김형준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과학연구부장
김형준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과학연구부장

이 두 기술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뇌를 조절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경혈자극은 뇌간 핵 등 신경계와 혈관계를 조절해 글림프계 흐름을 유도하고, 초음파 자극은 뇌 깊은 영역 신경계를 조절할 뿐 아니라 신경유액 흐름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기술 융합은 기존 치료법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뇌 청소 시스템' 자체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 약물치료가 특정 분자 표적에 집중했다면, 이런 접근은 뇌 환경 전체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연구가 단순 기초연구를 넘어 실제 치료기술과 의료기기 개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비침습적 자극 기반 치료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병원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적용 가능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는 환자의 자립적 생활 유지와 돌봄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국가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글림프계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명확한 기술적 리더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이 경혈자극과 초음파라는 독자적 강점을 결합해 새로운 치료 영역을 개척한다면, 글로벌 의료기술 패러다임을 선도할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

퇴행성 뇌질환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이제는 약물 중심 치료를 넘어, 뇌의 근본적인 생리 시스템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글림프계와 신경계를 동시에 조절하는 융합 치료기술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경혈자극과 초음파자극과 같은 기술을 활용해 뇌 기능을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기술은 앞으로 중요한 전략기술 분야로,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김형준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과학연구부장 heyjoon73@kio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