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USTR 통상 압박에 통신업계 “망 공정기여는 세계적 흐름…美도 망의 유상성 인정”

[이슈플러스] USTR 통상 압박에 통신업계 “망 공정기여는 세계적 흐름…美도 망의 유상성 인정”
통신사 직원들이 통신망을 점검하고 있다. @전자신문 DB
통신사 직원들이 통신망을 점검하고 있다. @전자신문 DB

국내 통신업계가 한국만 망 이용대가를 부과한다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주장에 대해 글로벌 시장 실태와 상거래 기본 원칙을 간과한 자가당착적 사고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산업계 관행을 외면한 왜곡된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공식 승인 문서와 현지 대형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법원 제출 진술서 등을 교차 검증한 결과 미국은 이미 인터넷사업자(ISP)와 CP간 망 이용대가 지불구조가 정착된 시장임이 확인됐다.

6일 업계에 따르면 USTR은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세계에서 ISP가 CP에게 네트워크 사용료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는 “미국 기업이 망 사용료, 플랫폼 규제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밝혔다.

◇ 美 통신사·규제당국도 '망의 유상성' 인정

실제 USTR의 논리는 미국 내 공식 문건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 통신사 AT&T는 '글로벌 네트워크 피어링 정책' 문서에서 CP와 트래픽을 교환하기 위한 계약은 역사적으로 유료 또는 상업적 합의에 의해서만 이뤄진다고 명시했다.

미국 대표 CP인 넷플릭스 진술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4년 넷플릭스가 컴캐스트의 타임워너케이블 인수를 반대하며 FCC에 제출한 진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컴캐스트와 원활한 트래픽 전송을 위한 상호 연결에 합의하며 '착신 접속료'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내에서 망 대가 산정 및 지불이 확고한 비즈니스 모델로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또한 2016년 FCC의 차터·TWC·브라이트하우스 합병 승인서에는 시장 지배력 남용을 우려해 합병 법인에 7년 동안 망 사용료 징수를 금지하는 조건을 부과했다. 여기에는 AT&T, 버라이즌, 센추리링크 등 6개의 대형 ISP들이 CP를 대상으로 유료 피어링(접속) 요금을 부과해 온 사실도 적시됐다. 미국 정부는 시장 독점이 우려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망 이용대가를 금지했으며, 망 이용대가 납부가 일반적 거래관행에 해당됐음이 입증되는 사례다. 미국 전역에서 일상적으로 징수된 비용을 두고 한국만 예외적이라고 주장하는 USTR의 논리적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USTR이 망 사용료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망 중립성' 원칙 역시 통신사와 CP를 직접 연결하는 상호접속 개념을 곡해한 결과다. FCC의 망 중립성 명령서 제30항은 “망 중립성 규칙을 상호접속(Interconnection)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국내 법원 역시 지난 2021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1심 소송에서 망 이용대가 미지불과 망 중립성은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 망 공정기여 원칙, EU 등 글로벌 스탠더드로 부상

망 공정기여는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가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는 빅테크와 통신사 간 분쟁 해결 메커니즘을 의무화하는 '디지털 네트워크법(DNA)' 제정을 적극 추진 중이다. 대형 CP의 망 무임승차를 방지하고 트래픽 유발 이익을 네트워크 투자에 공유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독일 법원은 도이치텔레콤과 메타간의 망 이용대가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동일하게 “메타에게 대가 지불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며 3000만유로(한화 약 520억원)의 지급을 명령했다. CP의 망 무임승차에 대해 통신사의 대가 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보고서에 따르면 이같은 망 공정기여 논의는 한국과 EU를 넘어 호주, 카리브해 통신연합(CTU), 남미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통신 시장에서도 소모적인 통상 마찰 우려를 불식시키고 글로벌 선례에 기반한 명확한 규제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CP를 실효성 있게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규제 당국 주도의 분쟁조정 매커니즘 도입을 꼽는다.

통신사와 CP 상호간 협상에 따라 상호무정산하는 '빌앤킵(Bill and Keep)' 원칙이 적용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시장 질서에 따른 계약이다.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정당한 협상, 계약을 회피하는 일은 견제해야 한다는 게 국회에 계류된 다수 법안의 취지다.

현재 이해민·김우영 의원이 공동발의한 '망이용계약 공정화법'의 경우 망이용대가 지불을 강제하는 방식이 아닌 기업간 사적계약 원칙을 존중하되 불공정행위 방지를 위한 사후규제 방식으로 최소한의 규범을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해당 법안은 특정 국가, 기업을 겨냥한 규제가 아니라, 공정한 거래 질서 확보를 위해 국내에서 사업하는 모든 사업자에 적용된다”며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건전한 재원 확보를 위해서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