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에너지믹스 현장을 가다] “5분 만에 전력 투입”…예천 양수, 재생에너지 시대 '물배터리(WESS)'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하부댐 전경. 사진 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하부댐 전경. 사진 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경북 예천군 은풍면 깊은 산속. 굽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하부댐 역할을 하는 거대한 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평범한 댐처럼 보였지만, 이곳은 대한민국 전력망 균형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버스를 타고 약 720m 길이 터널 아래로 내려가자 차갑고 습한 공기와 함께 육중한 발전기 2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지하 깊숙한 공간에서 돌아가는 터빈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수력원자력 예천양수발전소 전기를 만들어 내는 현장이다.

양수발전 원리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전력 수요가 적은 밤이나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는 남는 전기로 하부댐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린다. 반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 상부댐 물을 떨어뜨려 터빈을 돌리고 즉시 전기를 생산한다. 전기를 물 형태로 저장하는 셈이다.

예천양수발전소 설비용량은 총 800㎿ 규모다. 400㎿급 발전기 2기가 설치돼 있다. 국내 수력·양수 설비용량의 약 12%를 차지한다. 2011년 준공된 국내 최신 양수발전소다.

임석채 한국수력원자력 발전부장이 지난 15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하부댐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브리핑하고 있다.
임석채 한국수력원자력 발전부장이 지난 15일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하부댐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 출입기자단을 상대로 브리핑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시대 커지는 양수발전 역할

최근 양수발전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급변한다.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약해지면 출력이 급감할 수 있다. 반대로 전력 수요가 낮은 낮 시간대에는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도 발생한다.

전력망은 매 순간 60㎐ 수준 주파수를 유지해야 한다. 조금만 흔들려도 산업 설비와 송전망 전체 안정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높아질수록 이 균형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양수발전은 이런 순간적인 변동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설비다. 실제 예천양수는 단 5분이면 즉시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석탄화력 14시간, 복합화력 2시간 등 화력발전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빠르다.

임석채 한수원 발전부장은 “블랙아웃 발생 시 초기 전력을 공급해 다른 발전소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설비는 사실상 양수발전소뿐”이라면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 이후 양수발전 기동 횟수가 크게 늘었고 최근에는 적자 구조에서 흑자 전환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상부댐 전경. 사진 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상부댐 전경. 사진 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가장 안전하고 거대한 ESS”

업계에서는 양수발전을 거대한 '물배터리(WESS, Water ESS)'라고 부른다. 실제 역할은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유사하다.

다만 저장 규모와 안정성 면에서는 양수가 훨씬 강점을 가진다는 평가다. 배터리 ESS와 달리 화재 위험이 낮고 장기간 대용량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 부장은 “남는 전력을 물의 위치에너지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소는 전기를 저장하는 방식 가운데 에너지효율이 84% 수준으로 가장 높다”라면서 “병원으로 치면 응급실 같은 역할이다. 이용률보다 전력계통 안정화 기능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양수발전은 '발전소의 발전소' 역할도 한다. 만약 전국적 정전인 블랙아웃 상황이 발생하면 상부댐 물을 떨어뜨려 먼저 전기를 생산하고, 이 전기로 다른 대형 발전소를 다시 가동시킨다. 전력망을 다시 살리는 '블랙스타트' 기능이다.

정부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양수발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수원은 예천을 포함해 전국 7개 양수발전소를 운영 중이다. 총 설비용량은 4700㎿ 규모다. 여기에 영동(500㎿), 홍천(600㎿), 포천(700㎿) 등 총 1.8GW 규모 신규 양수발전 건설도 추진 중이다. 총사업비는 약 4조3000억원에 달한다.


한수원은 신규 양수발전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설 과정에서 지역 인력과 기업 참여를 확대하고, 관광자원화도 함께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상·하부댐 전경. 사진 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경북 예천군 은풍면 양수발전소 상·하부댐 전경. 사진 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