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만 많이 만들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최근 경북 울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예천 예천양수발전소, 안동 임하댐 등 한국수력원자력 에너지믹스 현장을 돌아보며 느낀 점이다.
인공지능(AI)·반도체·데이터센터 시대에는 단 1초의 정전도 치명적이다. 이제 블랙아웃은 단순 불편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 문제다.
울진 신한울 원전은 이런 시대를 떠받치는 '전력 심장' 같았다. 수많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오가는 주 제어실에서 운전원들이 24시간 발전 상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AI 시대에는 결국 흔들리지 않는 기저전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원전만으로는 답이 안 된다. 재생에너지도 확대해야 한다.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이 날씨에 따라 출력이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곳이 양수발전소다. 남는 전기로 물을 끌어올렸다가 필요할 때 즉시 전기를 만드는 초대형 '물배터리(WESS)'다. 실제로 예천양수는 5분 만에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전국 정전 상황에서 가장 먼저 살아나 다른 발전소를 다시 깨우는 역할도 맡는다.
안동 임하댐 수상태양광 역시 의미 있는 실험이다. 특히 기존 수력발전 송전망을 함께 쓰는 '교차발전' 방식은 눈길을 끈다. 낮에는 태양광, 밤에는 수력이 같은 송전선을 사용하는 구조다. 재생에너지 확대의 최대 과제인 계통 문제를 풀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는다.
결국 미래 전력망은 '원전이냐 재생에너지냐' 식 이분법으로 풀 수 없다. 원전이 안정적으로 받쳐주고,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을 이끌며, 양수발전을 비롯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흔들리는 전력망을 잡아줘야 한다.
에너지 대전환 시대.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블랙아웃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