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근의 감각지능] 센서플랫폼, 특별함은 기술을 만들지만 보편성은 확산을 만든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5/21/news-p.v1.20260521.9649d18025fb4987af25cb55cbe6f5a8_P1.png)
2016년 세계경제포럼은 다보스 연차총회의 주제를 '제4차 산업혁명 이해와 주도'로 잡았다. 클라우스 슈밥 의장은 4차 산업혁명을 “물리적, 디지털, 생물학적 영역의 융합”으로 설명했고, 이후 세계 제조업의 언어는 빠르게 바뀌었다. 사이버물리시스템(CPS), 초연결(Hyper-connect), 스마트팩토리, 디지털트윈, IoT, AI 같은 말들이 산업 현장의 미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가 되었다. 기술은 더 이상 생산을 돕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제조업의 구조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중심 언어로 올라섰다.
연결보다 먼저, 데이터의 입구
그러나 필자가 당시 이 내용을 보고 떠올린 질문은 조금 달랐다. 모두가 연결된 공장의 미래를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 연결의 출발점, 즉 현장 설비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꺼낼 것인지는 충분히 말하지 않았다. “오래된 설비의 신호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기존 센서와 PLC는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 “작업자가 쉽게 설치하고 유지보수할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가.” 스마트공장의 첫 질문은 거창한 초연결 이전에, 설비가 처음으로 말을 꺼내는 작은 입구였어야 했지만 당시 이 질문은 거대한 담론의 뒤편에 밀려 있었다.
현장의 질문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현장 작업자와 엔지니어는 “CPS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보다 먼저 “이 설비의 어디에 센서를 붙일 것인가”를 묻는다. “초연결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보다 먼저 “이 신호를 기존 PLC와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가”를 걱정한다. “AI를 적용하자”는 말보다 먼저 “문제가 생겼을 때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고 고칠 수 있는가”를 따진다. 제조 현장은 화려한 개념보다 손에 잡히는 구조를 요구한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은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낡은 설비의 아날로그 신호가 디지털의 언어로 바뀌는 바로 그 접점이었다. 현장은 언제나 거대한 담론보다 작은 모니터 앞에서 먼저 멈춰 선다.
특별함은 기술을 만들고, 보편성은 시장을 연다
기술은 대개 특별한 문제에서 태어난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뜨거운 곳, 너무 차가운 곳, 심한 진동이 발생하는 곳, 전선을 깔기 어렵거나 배터리를 교체하기 어려운 곳에서 새로운 센서와 측정 기술이 먼저 필요해진다. 필자 역시 그런 특수한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전원·무선 센서와 에너지 하베스팅 기반 센서 기술을 개발해 왔다. 특별한 문제는 특별한 기술을 만든다. 이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술이 시장으로 확산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시장은 특별함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센서라도 설치가 어렵고, 기존 설비와 연결되지 않으며, 현장 작업자가 유지보수할 수 없다면 확산되기 어렵다. 특정 현장 하나를 해결하는 기술과 여러 현장에서 반복 적용되는 기술은 다르다. 시장이 열리는 순간은 특별한 기술이 누구나 설치할 수 있고, 어디에나 연결할 수 있으며,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구조를 얻을 때다. 그 당시 필자가 '센서플랫폼'을 고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기술의 특별함은 개발자의 자부심이 될 수 있지만, 현장의 보편성은 고객의 사용 이유가 된다.
당시 '센서플랫폼'이라는 말은 이미 일부 연구와 IoT 분야에서 쓰이고 있었다. 많은 경우 센서 칩이나 소형 디바이스 내부를 플랫폼화하는 의미에 가까웠다. 칩 안에 여러 기능을 넣고, 센서 모듈을 표준화하는 방식이었다. 필자가 2016년 무렵부터 사용한 '센서플랫폼'은 조금 달랐다. 센서 안을 플랫폼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센서 밖의 세계를 플랫폼화하자는 뜻이었다.
![[오재근의 감각지능] 센서플랫폼, 특별함은 기술을 만들지만 보편성은 확산을 만든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5/21/news-p.v1.20260521.37c71b238587406aad3d63037f49b71d_P1.png)
기계와 설비에서 나오는 다양한 물리 신호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기존 센서·PLC·서버·HMI·DB를 프로그래밍 없이 레고처럼 연결해 현장 데이터를 반복 적용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센서 디바이스 중심이 아니라, 기계와 데이터가 만나는 접점의 플랫폼이었다.
센서플랫폼은 제품이 아니라 구조다
필자가 2016년부터 센서플랫폼을 스마트공장 현장에 먼저 적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목표는 단순히 성능 좋은 센서 하나를 더 파는 것이 아니었다. 현장마다 다른 설비 신호를 하나의 보편적인 구조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국내뿐 아니라 중국, 일본의 현지 공장 100여 곳에 센서플랫폼을 구축해 왔다. 이 경험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센서의 확산은 성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능은 출발점일 뿐이다. 시장은 결국 설치성, 연결성, 반복성, 유지보수성, 그리고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쉽게 설치하고, 쉽게 쓸 수 있어야 확산된다. 요즘에야 노코드(No-code) 기반 시스템이 일반적으로 이야기되지만 당시로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컸다.
센서플랫폼의 본질은 센서를 많이 붙이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현장의 신호를 하나의 데이터 흐름 안에서 읽히게 만드는 것이다. 기존에 설치된 센서와 새롭게 추가된 센서가 함께 연결되고, PLC와 서버가 이어지며, HMI와 데이터베이스가 같은 구조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현장의 신호는 단순한 측정값에 머물지 않는다. 설비 상태를 보고, 이상을 감지하고, 유지보수 판단으로 이어지며, 나아가 현장 운영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 자산으로 축적된다. 센서가 값을 내는 것과 현장이 그 값을 업무에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플랫폼은 그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구조이고, 바로 그 점이 센서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다.
이 구조의 힘은 반복 가능성에서 나온다. 고압 배전반, 자동차 생산라인, 발전소, LNG 배관은 서로 전혀 다른 시장처럼 보인다. 온도도 다르고, 진동도 다르고, 설치 환경도 다르며, 요구하는 신뢰성도 다르다. 그러나 현장 신호를 취득하고, 변환하고, 전송하고, 저장하고, 표시하고, 서비스로 연결하는 큰 흐름은 반복될 수 있다. 특화 센서가 개별 현장의 해답이었다면, 센서플랫폼은 그 해답을 다음 현장에서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시도였다. 특별한 감각을 보편적인 산업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었다.
다시 설비를 읽는 시대
이 점에서 센서플랫폼은 스마트공장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 설비를 다시 읽기 위한 기반이었다. 오래된 설비는 처음부터 데이터를 내보내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설비의 몸은 여전히 작동하지만, 그 상태를 디지털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런 설비에 센서를 붙이고, 신호를 해석하고, 기존 제어 시스템과 연결해 다시 데이터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센서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스마트공장 구축을 넘어, 기존 설비를 새롭게 읽는 체계로 확장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인더스트리 5.0과 AI-native, 즉 AI 지향 구조를 말하는 지금에 와서야 연구자들은 다시 “데이터는 어디서 오는가”를 묻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간 중심,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은 중요하다. 그러나 설비의 상태가 보이지 않으면 인간 중심도, 회복탄력성도 현장의 언어가 되기 어렵다. 과거의 표준은 사람이 이해하고 관리하기 쉬운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으는 데 가까웠다. 그러나 AI가 판단 주체로 들어오는 순간, 표준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제는 어떤 데이터를 모을 것인가를 넘어, AI가 어디서 감지하고, 어디서 판단하며, 어떤 데이터만 위로 올릴 것인가까지 생각해야 한다.
특별함은 기술을 만든다. 그러나 보편성은 확산을 만든다. 센서플랫폼은 특별한 감각을 시장이 받아들이고, 설비가 말할 수 있으며, 데이터 시스템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기 위한 구조였다. 스마트공장의 첫 질문이 데이터의 입구였다면, 다음 질문은 그 입구를 통해 들어온 감각을 어디서, 어떻게 판단하게 할 것인가이다. 센서플랫폼은 그 전환을 준비한 첫 번째 현장 언어였다. 산업의 미래는 거대한 개념에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오래된 설비가 보내는 작은 신호를 다시 듣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오재근 | 코아칩스 대표이사
국내 최초 SAW 기반 무전원·무선 센서 개발자로, 센서·에너지 하베스팅·산업용 무선 계측 분야를 25년 이상 연구해왔다. '표면탄성파(SAW)를 이용한 에너지 포집형 무전원·무선 센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SAW 무전원·무선 온도 센서 및 극한 환경용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등을 개발·제품화했다. 기아자동차 연구원, 호서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코아칩스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무전원·무선 센서, 에너지 하베스팅 무선 센서 및 IIoT 센서를 기반으로 디지털 리트로핏, 온디바이스 AI를 연결한 제조 DX의 현실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