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하-의·치·한·약·수 vs 르네상스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가총액 12위로 '1조 클럽'에 진입했다. 빅테크를 보유한 미국 외에는 시총 1조달러를 넘긴 회사를 둘 이상 보유한 나라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하의치한약수'는 '의대 쏠림'을 상징해 온 '의치한약수' 앞에 하이닉스의 '하'가 붙은 신조어다.

'한국형 빅테크'의 출현이 '의대 쏠림' 편향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의과대학 교수다. 중학생 때는 청계천 전자상가를 돌며 저항과 트랜지스터를 사서 납땜질로 무전기와 라디오, 뮤직박스를 만들며 많은 밤을 지샜다. 8비트 애플 호환 PC에는 하드는 커녕 플로피 디스크도 없었다. 작성한 코드를 저장하는 카세트테이프는 더운 날이면 늘어져 코드를 날려 먹곤 했다.

박사를 마치고 정신과전문의가 된 30대의 늦은 나이에 “의학의 미래는 컴퓨팅이야”라며 유학길에 올랐다. MIT 학위를 하나 더 받았다. '멍청한 유학'이란 비난을 많이도 받았다.

세계 최초의 대학은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다. 중세의 대학은 지금에 비하면 단순했다. 볼로냐와 파리 대학에서 다루던 핵심 지식은 '신학'과 '법학' 그리고 '의학'이었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사람을 '통치'하거나 '다루는'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었고, 전문직 양성이 목표인 '전문직 교육(Professional Education)'이었다.

100년 전쟁과 흑사병의 여파로 봉건 중세가 몰락하는 한편 온난한 기후와 농업기술 혁신으로 도시와 상공업과 금융이 발달하며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교회의 권위는 약화되고 인간 중심 학문, 예술, 과학이 꽃피웠다.

1543년은 코페르니쿠스 '지동설'과 베살리우스의 '해부학' 저서가 함께 출판된 기념비적 시기다. 물리학과 천문학은 우주를 '신비'가 아닌 '수학'으로 설명해 내며 '권위'가 아닌 '실험과 증거'로 '세상을 해석하는 지식'을 밝혔다.

베살리우스는 '권위'가 아닌 '관찰과 실험'에 기반한 '인체를 다루는 지식'의 의학적 토대를 세웠다.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완성하고 원근법을 확립하며 '세상을 설계하는 지식'도 싹 틔웠다. 옛 현자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에 머물던 '지식'은 르네상스를 통해 '인간의 이성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되었다. 대학 교육에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Liberal Arts and Sciences)'이 빠르게 도입됐다.

독일의 훔볼트는 프로이센 왕을 설득해 대학이 '교육'뿐 아니라 '연구'의 주체가 되는 최초의 연구중심대학(Research University)을 설립했다. 20세기 초 독일은 과학기술 중심 국가로 우뚝 섰다. MIT는 훔볼트 사상을 계승하고 산업혁명과 장인의 실습 정신을 근대 과학기술학 학위 체계로 통합한 과기대(IST:Institute of Sciences and Technology)로 출범했다.

이제 대학은 학문적 자율성과 함께 '지식을 가르치는 곳'에서 '지식을 창출하는 곳'이 되었다. 막스플랑크,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그처럼 훔볼트 연구중심대학 모델의 가장 큰 성공 사례는 물리학 분야였다.

한편 의학은 연구, 진료, 전문직 양성을 통합하며 훔볼트가 꿈꾸었던 '순수 학문 연구와 교육의 통합'을 전형적으로 실현하며 물리학에 필적하는 성공 사례로 꼽힌다. 또 화학,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언어학, 공학 분야도 훔볼트 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들이다.

이제 때가 되었다. Professional Education 중심의 '의약학계열'과 STEM Education 중심의 '이공학계열' 사이에도 연계와 통합이 실현될 때가 왔다. 전문자격증 중심의 학제와 자율 탐구 중심의 학제는 서로 너무나 달라서 연계나 통합이 어렵지만 지식은 본디 하나다.

황제가 점지해 준 지식 쪼가리들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지식' '사람을 다루는 지식' '세상을 설계하고 바꾸는 지식'이 인류의 자율적 이성으로 창출된다.

'한국형 빅테크'의 출현으로 '하-의·치·한·약·수'란 신조어가 탄생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깨달음이 안정적 전문직에 지나치게 쏠린 교육 현장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원한다.


마침 서울대는 2027년에 '의약학계열'의 전문직 교육과 '이공학계열'의 자율 탐구 교육을 통합적으로 연계한 '과학·기술·의학(Health Sciences and Technololgy:HST)' 연합전공을 신설하며, 르네상스와 근대 훔볼트 시대의 대학교육 혁신의 꿈과 함께 한 번 더 도약한다.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 정보의학, 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 정보의학, 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정보의학·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