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형은행 뭉쳐 '토큰화 예금' 추진…스테이블 코인 맞설 공동 결제망 추진

JP모건체이스 전경
JP모건체이스 전경

미국 메가뱅크들이 스테이블 코인 확산에 맞서 공동 블록체인 결제망 구축에 나섰다. 스테이블 코인에 빼앗길 수 있는 결제·정산 주도권과 예금을 지키기 위한 은행권의 공동 대응이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은행들은 2027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전국 단위 토큰화 예금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공동 결제회사인 더 클리어링 하우스(The Clearing House)를 통해 새 결제망을 만들고 있다. 운영도 더 클리어링 하우스가 맡을 전망이다.

이 결제망은 은행 계좌에 있는 예금을 블록체인에서 바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일부 은행은 해당 프로젝트를 '더 브리지(The Bridge)' 또는 '더 체인(The Chain)'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큰화 예금은 은행 계좌에 있는 예금을 블록체인에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든 디지털 예금이다. 은행 예금에 스테이블 코인과 비슷한 결제 기능을 입힌 것이다. 예금을 은행 밖으로 빼내 별도 코인으로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돈은 은행에 그대로 두고 블록체인에서 빠르게 송금·결제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스테이블 코인은 통장에서 돈을 꺼내 전자지갑에 넣어 쓰는 방식이고, 토큰화 예금은 통장에 돈을 둔 채 송금 기능만 더 빠르게 만든 방식이다.

은행권이 뭉친 이유는 스테이블 코인이 결제 인프라 경쟁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은행 영업시간이나 중개은행망에 구애받지 않고 24시간 국경 간 송금과 기업 간 결제가 가능하다. 기존 은행이 맡아온 송금·결제·정산 기능을 블록체인 기반 사업자가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토큰화 예금은 이런 위협에 대한 은행권의 대응책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예금을 기존 규제 시스템 안에 유지하면서도 스테이블 코인 수준의 빠른 결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기업 고객은 해외 법인 간 자금 이동, 유동성 관리, 국경 간 결제 등에서 실시간 정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초기 수요처는 일반 개인보다 다국적 기업과 기관 고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재무팀의 글로벌 자금관리, 해외 법인 간 유동성 이전, 국경 간 결제 등이 주요 활용처로 거론된다. 외신은 미국 대형은행들이 우선 토큰화 예금 네트워크를 추진하되, 향후 시장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자체 스테이블 코인 발행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전했다.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 차이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 차이

국내 금융권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싸고 은행, 핀테크, 가상자산사업자 간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은행권 움직임은 디지털자산 결제 경쟁의 초점이 단순히 '발행 주체'를 넘어 '결제·정산망 주도권'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테이블코인이 은행을 거치지 않는 새로운 결제망을 구축하는 방식이라면, 토큰화 예금은 기존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결제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 논의와 별도로 예금토큰, 은행 공동 결제망,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연계 모델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이 실제 결제수단으로 쓰이려면 발행 주체뿐 아니라 이를 유통·정산할 수 있는 결제망이 함께 필요하다”며 “국내에서는 스테이블 코인 발행 주체만 갖고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생뚱맞다”고 지적했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