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년 전 1m짜리 화석, 고대 전갈이었다… 150년만에 풀린 비밀

런던 자연사박물관, 1870년대 화석 재분석
대형 '프라에아르크투루스 기가스'로 확인

고대 절지동물 '프라에아르크투루스 기가스(Praearcturus gigas)' 상상도. 사진=런던 자연사박물관
고대 절지동물 '프라에아르크투루스 기가스(Praearcturus gigas)' 상상도. 사진=런던 자연사박물관

약 4억1500만년 전 고대 지구를 누볐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갈의 비밀이 150여년 만에 풀렸다. 당초 바닷가재와 같은 갑각류로 오인되었던 이 생물은 조사 결과 야구방망이 크기에 달하는 거대 전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0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국제 고생물학 저널 최근호를 통해 고대 절지동물인 '프라에아르크투루스 기가스(Praearcturus gigas)'가 전갈류에 속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길이 약 1m에 달하는 이 화석은 1870년대 처음 발견된 이후 등각류 등 갑각류의 일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연구팀이 박물관에 150년 가까이 보관돼 있던 화석과 새로 발견된 표본 등 총 8점의 화석을 CT(컴퓨터단층촬영) 스캔 등 첨단 장비로 정밀 분석한 결과, 전갈의 결정적 특징이 확인됐다.

고대 절지동물 '프라에아르크투루스 기가스(Praearcturus gigas)' 화석. 사진=런던 자연사박물관
고대 절지동물 '프라에아르크투루스 기가스(Praearcturus gigas)' 화석. 사진=런던 자연사박물관

가장 명확한 증거는 다리 사이 몸통 아래쪽에 위치한 '흉골'이었다. 연구팀은 이 화석의 길고 삼각형 모양인 흉골과 중앙의 홈이 2015년 캐나다에서 발견된 고대 전갈 '에라모스코르피우스 브루센시스(Eramoscorpius brucensis)'의 구조와 완벽히 일치한다는 점을 포착했다. 몸 표면의 거친 돌기 역시 현대 전갈과 유사한 특징이다.

이 전갈의 전체 길이는 약 1m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집게발의 길이만 약 16cm로, 현존하는 가장 큰 전갈종으로 알려진 '아시안 자이언트 포레스트 전갈'의 평균 몸 길이(10~13cm)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다. 해당 현대 전갈이 최대 23cm까지 자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대 전갈은 집게발 하나 크기가 현대 거대 전갈의 몸통 대부분과 맞먹었던 셈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호주 플린더스 대학교의 고생물학자 러셀 비크넬 박사는 “정말 거대하고 뚱뚱한 생물”이라며 “어두운 골목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괴물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목할 점은 이 전갈이 살았던 시기가 지구상에 산소가 풍부해져 거대 곤충들이 번성하기 시작한 때보다 약 5000만 년이나 앞선 고생대 데본기 초기를 뜻하는 '조기 데본기'라는 점이다.

당시는 수생동물이 번성했던 시기로, 육지에는 진드기나 거미류 등 아주 작은 생물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이 거대 전갈이 육지와 물속을 오가는 '양서성' 생활을 하며 물속의 원시 무악어(턱이 없는 물고기)류나 판피류 등을 사냥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전갈의 핵심 특징인 꼬리 끝 독침이나 배 밑의 빗 모양 감각 기관인 펙텐(pecten)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리처드 하워드 런던 자연사박물관 학예관은 “화석이 불완전할 뿐”이라며 “공룡 골격 화석에서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머리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독일 프리드리히-알렉산더 대학교의 엘리자베스 다우딩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존 고생물학 데이터베이스를 통째로 업데이트해야 할 만큼 중요한 발견”이라며 “과거 생태계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