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사진가를 대체할 것인가?”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사진계에서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사진가를 대체한 적이 있었는가. 포토샵이 사진가를 대체한 적이 있었는가. 드론이 사진가를 대체한 적이 있었는가.
기술은 사진가를 대체하지 않았다. 다만 사진가가 사용하는 도구와 역할을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 포토샵, 드론을 다룰 줄 아는 사진가인가 그렇지 못한 사진가인가의 차이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인간과 경쟁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그러나 AI는 경쟁자가 아니다. AI는 카메라처럼, 포토샵처럼, 인터넷처럼 사진 환경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기술일 뿐이다. 문제는 AI의 등장 자체가 아니라 변화한 환경 속에서 사진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있다. AI를 사용하면 카메라가 필요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카메라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그 판단과 결정 역시 AI를 사용하고 있는 사진가의 몫이다. 암실이 없어도 사진이 만들어 지듯 카메라가 없어도 사진을 만들 수 있고 궁극의 창작 활동은 사진가가 하는 것이다.
사실 사진의 역사는 기술혁신의 역사였다. 유리건판에서 필름으로,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디지털카메라에서 스마트폰으로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직업도 있었지만 새로운 직업도 등장했다. 암실 전문가가 줄어든 대신 디지털 편집 전문가가 생겨났고, 스튜디오 촬영 중심의 시장이 줄어든 대신 콘텐츠 제작과 영상 분야가 성장했다. 돌이켜 보면 기술의 발전이 사진을 위협한 것이 아니라 사진의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AI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미 AI는 이미지 보정과 합성, 배경 생성, 기획 시안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과거 며칠이 걸리던 작업을 몇 시간 만에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진의 종말이 아니라 사진 작업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오히려 AI 시대가 되면서 사진가에게 더욱 중요한 능력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왜 기록해야 하는가.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가. AI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 순간인지 스스로 판단하지는 못한다. AI는 수많은 장면을 생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과 역사, 감정과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사진은 원래 셔터를 누르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좋은 사진은 카메라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시선이 만든다. 같은 장소에 서 있어도 누구는 풍경을 찍고 누구는 사람을 찍는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아도 누구는 갈등을 발견하고 누구는 희망을 발견한다. 결국 사진의 가치는 장비가 아니라 해석에 있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의 사진가는 촬영자가 아니라 시각 콘텐츠 기획자이자 시각 데이터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사회와 문화를 읽고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AI와 XR, 공간정보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래 산업의 핵심 자원 중 하나가 바로 이미지와 시각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카메라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디지털트윈은 현실 공간을 사진 기반 3D 데이터로 재현한다.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과 XR 콘텐츠, 스마트시티, AI 학습데이터 구축 역시 모두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사진진흥법은 단순히 사진전을 지원하거나 사진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 차원의 사진 연구개발(R&D)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 AI 학습용 이미지 데이터 구축, 디지털트윈용 공간영상 기술, 문화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XR 콘텐츠 제작, 드론 기반 시각정보 구축과 같은 미래 산업 영역을 사진 분야의 연구개발 과제로 육성해야 한다.
AI 콘텐츠, 공간영상 데이터, 디지털 아카이브, XR 콘텐츠, 문화기술 분야에서 사진가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AI와 데이터, 공간정보, XR 기술을 이해하는 미래형 사진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사진진흥법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사진가들에게 변화에 적응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들이 미래 산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AI는 사진가의 적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다. AI는 사진가들에게 새로운 운동장이 열렸다는 신호다. 사진가가 그 운동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진가들이 AI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수준을 넘어 미래 시각산업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사진진흥법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사진의 미래다.
강종진 전 사진산업진흥법제정위원회 위원장 jongje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