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AI 시대, '학습하는 의료 시스템'

의학 발전의 역사는 신기술을 가장 빠르게 흡수해 온 통합의 역사였다. 청진기는 의사의 귀를 바꾸었고, X선은 몸속을 보이게 만들었다. 혈액검사와 심전도는 질병을 숫자와 파형으로 번역했다. 마취는 수술을 확장했고, 항생제는 미생물과 환경을 통제했다. 내시경, 로봇수술, 디지털헬스, 원격 모니터링, 인공지능(AI)까지 모든 신기술이 차례로 진입 중이다.

'생명의 복잡성'과 '삶의 가치'를 다루는 의학은 본질적으로 '필연과 우연'이 뒤섞인 '불확실성의 학문'이다. 수많은 기술과 전문성이 어우러진 거대한 시스템이다. 개별 요소와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생성형 AI는 요약도 잘하고 설명도 잘하고 기록도 잘 정리한다. 그런데 너무 매끄럽다. 의학의 근원적 불확실성은 같은 증상 뒤에 다른 질병들을 숨기며, 같은 검사 결과도 환자 삶의 맥락에 따라 달리 읽어내야 하는 이유다.

빠른 결론보다 '최종 결론을 늦추는 힘'도 필요하다. 생성형 AI는 이 의학의 '근원적 불확실성'을 너무 쉽게 현란한 문장으로 뒤덮어 버린다. 의문은 사라지고 설명만 난무한다. 모든 의학적 판단은 틀릴 수 있지만, 더 큰 위험은 AI가 '충분히 검토된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해냄에 있다. 자신감 넘치는 문장은 우리를 안심시키지만 '왜 이것이 이 고유한 단 한 명의 환자에게 맞는가'를 끝까지 탐구할 힘과 노력을 잃게 만든다.

의료시스템에 가장 필요한 것은 'AI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판단할 것인가' '무슨 판단을 정당한 판단으로 인정할 것인가' '기술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제어할 것인가'다.

전문직의 역할도 바뀐다. AI 시대의 의사는 정보를 독점하기보다 정보를 책임성 있게 판단하는 자다. 어떤 권고가 왜 이 환자에게는 맞고 저 환자에게는 틀릴지 찾아야 한다. 좋은 의사는 '많이 아는 의사'보다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의사'다.

환자는 내원 전 AI에게 먼저 묻고, 검색하고, 비교한다. 더 많이 질문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환자는 분명 건강한 환자다. 하지만 정보가 많다고 더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많은 정보는 혼란을 더 키우고, 그럴듯해 보이는 언변으로 유혹한다. AI는 위험 신호를 더 빨리 포착해 더 빨리 경고하고, 더 많은 사람을 선별하고, 더 빠른 개입도 돕는다. 하지만 이는 과잉 예측, 과잉 선별, 과잉 알림, 과잉 관리를 유발하곤 한다. 불확실성의 의학은 말한다. 좋은 의료는 오히려 언제 멈추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 설명과 안심이 검사나 처방보다 더 나은 선택인지를 마지막까지 판단하고 판단하는 행위다.

AI 시대의 병원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학습전략'이 필요하다. 단지 더 많은 솔루션을 도입하는 병원은 곤란하다. 'AI 군단'으로 중무장한 '스마트' 병원이 아니라, AI 도구들과 상호작용으로 더 잘 학습하는 병원이다. 어떤 AI가 실제로 환자를 돕는지, 어떤 AI가 혼란과 불안을 증폭하는지, 어떤 경고는 무의미했고 어떤 환자군 선정은 편향을 키웠는지, 무엇을 과신했고 무엇을 무시했는지 하는 시스템적 학습이 지속되는 장소여야 한다.

'불확실성의 의학'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의료시스템(Learning Healthcare System)이다. 그것은 단순한 AI 전환이 아니다. 데이터만 많이 모아도 소용없다. 더 강한 감시체계 도입도 아니다. 현명하게 학습하는 시스템이다. 불확실성의 과학인 의학은 의료인과 환자, 병원과 보험자, 정책과 사회의 실패와 편향의 충돌을 예외, 불확실성, 가치의 상대성 속에서 새로운 학습 자원들로 변환하는 시스템이다.

AI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AI를 어떤 가치와 질서 체계 안에 놓을 것인가'이다. 환자 돌봄보다 효율이 앞서는 순간, 의료는 뒤틀어진다. 전문직의 책임성보다 자동화가 앞서는 순간, 의료는 무책임해진다. 환자의 참여보다 플랫폼의 편의가 앞서는 순간, 의료는 비인격화된다.


불확실성의 의학은 더 빨리 예측하는 능력보다 더 적절히 멈춰서는 힘을 요한다. AI 시대에 병원이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기준은 의료시스템 구성요소의 기술적 정교함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인 환자 자신과 환자의 가치뿐이다. 그것이 모든 불확실성과 상대성의 근원이기도 하고 삶의 가치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정보의학·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정보의학·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정보의학·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