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연동제 제외… 반도체 기판 성장 발목

중앙처리장치(CPU)와 기판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앙처리장치(CPU)와 기판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 초호황에도 핵심 구성 요소인 기판 업계가 성장에 발목을 잡혔다. 수익을 보장할 반도체 기판 납품 가격을 쉽게 올리지 못해서다.

원자재 값은 크게 올랐지만 이를 기판 가격에 반영할 제도적 장치인 '납품 단가 연동제'는 업계 대표 기업 대부분에 적용되지 않는다. 제도가 정한 매출 기준 탓으로, 중견기업이 다수인 반도체 기판 업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반도체 기판 기업은 연간 매출 3000억원을 넘어 '납품 단가 연동제' 제외 대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기·LG이노텍 등 대기업 계열사뿐만 아니라 대덕전자·심텍·코리아써키트·해성디에스 등 대표 기판 기업이자 중견기업 역시 납품 단가 연동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기판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반도체 기판 원재료 구매 가격이 크게 뛰었지만 정작 기판 업체는 최종 완제품 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원재료 가격 상승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납품 단가 연동제 대상에 반도체 기판 기업 대다수가 해당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납품 단가 연동제는 원재료 값이 오르내리면 변동분을 납품 대금에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가령 반도체 기판 핵심 재료인 금·구리 가격이 오르면 이를 최종 기판 제품 납품 가격에 반영해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

현행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은 수탁 기업, 즉 제품을 공급하는 협력사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을 연동제 대상으로 두고 있다. 매출 3000억원이 넘는 중견기업은 배제한다. 연동제 취지가 원자재 가격 변동 부담을 중소·중견 기업에 전가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매출 3000억원이 넘는 기업은 제도로 보호할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해서다.

기판 업계는 이같은 기준이 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반도체 기판 제조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산업이고, 공급되는 물량이 많아 매출 단위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같은 반도체 초호황기에는 매출이 단기적으로 급등한다. 국내 주요 기판 업체가 대부분 매출 3000억원을 넘는 중견기업인 이유다.

반면 연동제 핵심 이슈인 원자재 가격은 급등세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면서 기판 필요성도 커졌다. 반도체 기판을 제조하기 위한 원자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빠르게 오른 것이다. 기판 제조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금·구리 경우 올해 초까지 최대 50% 상승했다.

상황에 맞춰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 반도체 기판에 반영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3~4% 소폭 인상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반도체 기판 제조사가 연동제 대상에 제외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고객사가 의무적으로 납품 단가를 인상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고스란히 반도체 기판 기업의 성장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판 고객사인 반도체 제조사는 최대 70% 이상의 영업이익(1분기 기준)을 기록했지만, 기판 제조사는 한 자릿수 영업이익에 그치고 있다.


안영우 한국PCB반도체패키징산업협회(KPCA) 사무총장은 “AI 반도체 시대를 맞아 지속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특정 기업에 원가 상승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가격 연동 체계와 상생협력 기반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가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공급망 전반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나서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요 반도체 기판 중견기업 매출 규모 및 영업이익률 - 자료 : 업계 취합
주요 반도체 기판 중견기업 매출 규모 및 영업이익률 - 자료 : 업계 취합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