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튀르키예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방위 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공동 연구·개발과 생산, 운용 등을 포함해 여러 방면에서 협력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또한 우주·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기술 분야 협력 확대도 이끌어냈고 한국-나토의 '조달 기본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도 시작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방산포럼에 참석하고 기조연설을 통해 “무기체계를 거래하는 현재의 방산 협력을 넘어, 무기 체계를 함께 연구·생산·운용하는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인해 한국과 나토의 방산 협력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첨단 기술 분야를 비롯해 다방면에서 협력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유력한 방산 경쟁국인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총리를 만나 방산 분야 공동 연구 개발과 공동 생산, 제3국 공동 진출 등을 역제안하기도 했다. 경쟁할 때는 다투되 공동으로 대응할 때는 협력한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는 냉전 이후 지속돼 온 국제질서의 안정기를 지나 지정학적 갈등이 상시화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행동은 더 과감해야 하고 협력은 더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공지능과 드론, 로봇과 같은 첨단기술의 군사적 활용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됐다. 또 무기를 생산하는 것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을 얼마나 견고하게 유지하느냐가 억제력의 본질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쟁이 전장에서만 결정되지 않고 연구소와 무기를 생산하는 산업현장이 국가안보의 최전선이 됐다”며 “방위산업 기반 그 자체가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 오늘 우리가 협력을 논의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뢰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협력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기술과 생산력만큼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바로 신뢰다. 어떤 상황에도 공급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확신, 핵심 기술이 안전하게 지켜지리라는 믿음 없이 협력은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그 신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나토와 한국은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엄중한 안보 환경 속에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의 가치를 함께 지켜온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런 신뢰 위에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대서양과 유라시아를 넘어 폴란드, 독일, 프랑스, 루마니아, 노르웨이 등 많은 NATO 동맹국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며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를 지키는 일은 어느 한 나라의 몫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첨단 기술의 공동 연구를 과감하게 확장해야 한다. 한국이 참여하는 나토의 탄약, 우주 분야 협력 프로그램처럼 더 많은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국제에너지기구 회원국들이 전략 비축유를 공동 관리하며 에너지 위기에 함께 대응하듯, 방산에서도 이런 지혜가 발휘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구체적 성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면담하고 한국과 나토 사이에 '조달 기본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개시한다고 공개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앙카라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한국은 장비와 물자를 공동개발 하는 다국적 협력사업 중 기존 옵서버로 참여한 탄약 공급 사업에 더해, 방산·원자재 사업에도 옵서버로 참여하게 됐다. 다국적 협력 사업이 더욱 확대됐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번 협상 개시로 세계 최대 규모의 나토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위 실장은 “협정 체결 시에는 연 15조원으로 예상되는 나토 공동조달 시장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면서 “탄약, 방산, 원자재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한국과 나토 간 무기 체계의 상호 운용성을 강화하는 것이자, 한국 군수품의 안정적 조달 여건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 첨단산업 분야 협력도 확대했다.
위 실장은 “우주 관련 사업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나토가 보유한 우주산업 인프라를 활용, 우리의 우주발사 기회를 넓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을 통해 드론·AI 등 첨단 기술이 좌우하는 미래전에 대한 경험을 축적했다”며 “한국 역시 나토 혁신훈련장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최하는 리셉션에서 정상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현재로서는 리셉션 개최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