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톨릭대(총장 성한기)는 박희성 보건관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암세포끼리 경쟁하는 원리를 활용해 혈액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기존 항암제의 효과를 높이는 치료 후보물질을 개발했다고 2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온콜로지 리서치(Oncology Research)'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우리 몸에서 에너지 생성에 관여하는 GPI(포도당인산이성화효소) 단백질에 주목했다. 이 단백질은 세포 밖으로 나오면 AMF(자가운동인자) 신호물질로 작용하는데, 어떤 암세포에는 성장을 돕는 반면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암세포에는 성장을 방해하는 신호를 보낸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AMF의 핵심 부분만을 14개 아미노산으로 구성한 짧은 펩타이드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AAP 펩타이드(폐암세포 AMF에서 유래)는 혈액암 세포의 성장을 선별적으로 억제하고 기존 항암제가 더 잘 작용하도록 돕는 효과를 보였다.
AAP 펩타이드가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암세포 내부의 활성산소가 늘고 에너지 생성 기능이 약해진다. 동시에 암세포가 항암제를 세포 밖으로 적극적으로 배출하면서 항암제 내성 발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지니는 ABC 수송체 단백질의 발현도 낮아져, 항암제가 세포 안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실제로 기존 혈액암 치료제인 독소루비신과 AAP를 함께 처리한 결과, 암세포 성장을 절반으로 억제하는 데 필요한 독소루비신 농도가 혈액암 세포 종류에 따라 28~53% 감소했다. 즉 적은 양의 항암제로도 더 큰 효과를 낼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박희성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새로운 항암 물질을 외부에서 찾는 기존 방식과 달리, 인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세포 경쟁 원리를 치료 전략으로 활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암세포를 직접 약하게 만들면서 기존 항암제의 효과도 높이는 새로운 다제내성 극복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암 세포주를 이용한 세포 실험 단계로, 실제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는 정상 조혈세포와 동물모델을 활용한 효능·안전성 검증이 추가로 필요하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