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24시간 멈추지 앉는 새로운 담수화 기술 개발

사막 한복판에서 목이 마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속 주인공이라면 태양광 정수기를 꺼내겠지만, 현실에서는 해가 없으면 힘을 못 쓰고 오래 쓰면 잔고장이 생기기 일쑤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나무판을 김밥처럼 돌돌 말아 밤에도 마르지 않는 담수화 기술을 개발했다.

포스텍(POSTECH)은 전상민 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나무판을 김밥처럼 돌돌 말아 밤에도 마르지 않는 담수화 기술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전기 공급이 어려운 지역이나 재난 현장에서 밤낮없이 물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번 기술을 최근 물·환경 분야 국제 학술지 'npj Clean Water'에 게재됐다.

(왼쪽부터) 전상민 교수, 석사과정 이정은 씨, 타우시프와니 연구원
(왼쪽부터) 전상민 교수, 석사과정 이정은 씨, 타우시프와니 연구원

태양광을 이용한 해수 담수화 기술은 전기가 없어도 깨끗한 물을 만들 수 있어 오래전부터 주목받아 온 친환경 기술이다. 검은 소재가 햇빛을 흡수해 해수를 데우면, 물은 증발해 소금기를 남기고 순수한 수증기만 빠져나가 물로 응축된다. 문제는 증발 면적을 넓히기 위해 증발기를 높이 쌓을수록 물을 꼭대기까지 끌어올리기가 어려워지고, 시간이 지나면 표면에 소금 결정이 쌓여 물길을 막아버린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원목을 종이처럼 얇게 켜낸 나무판(베니어)을 김밥처럼 돌돌 말아 '우드 스크롤(Wood Scroll)'이라는 원통형 증발기를 만들었다. 나무를 말면 층과 층 사이에 미세한 틈이 생기는데, 이 틈이 바로 물이 다니는 새로운 통로가 된다. 물은 이 통로를 타고 증발기의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증발하고 남은 소금기 역시 이 통로를 따라 다시 바닷물 쪽으로 흘러 내려가 녹아 없어진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통로가 좁을수록 '모세관 현상'으로 인해 물이 더 잘 빨려 올라갈 거라는 상식과 달리, 실제로는 통로가 어느 정도 넓어야 물도 잘 오르고 소금도 잘 녹아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밝혀냈다는 것이다. 이는 물이 원활하게 공급되면서 소금이 한곳에 쌓이지 않으려면 충분한 공간을 가진 물길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환경 증발기의 담수 생산 메커니즘 모식도(왼족)와 해수를 증발하여 얻은 담수로 키운 보리 사진
친환경 증발기의 담수 생산 메커니즘 모식도(왼족)와 해수를 증발하여 얻은 담수로 키운 보리 사진

연구팀이 만든 높이 40㎝ 우드 스크롤 증발기는 태양광 1개 조건(1 sun, 맑은 날 정오 햇빛 세기)에서 시간당 35.8kg/㎡의 물을 증발시켰다. 이는 기존 태양광 증발기들과 비교해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더 놀라운 건 밤에도 증발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통 모양 긴 옆면이 마치 라디에이터처럼 주변에 있는 열을 계속 흡수해, 해가 없어도 그 열을 이용해 물을 계속 증발했다. 바닷물과 비슷한 3.5w%(무게 기준 농도) 염도 환경에서 실험한 결과, 낮 동안 표면에 쌓였던 소금이 밤사이 자연스럽게 다시 녹아 사라지는 '자가 염 제거' 현상도 확인됐다. 사람이 청소하지 않아도 스스로 깨끗해지는 셈이다.

실제 야외에서도 우드 스크롤 증발기를 여러 대 세워 담수화 성능을 검증했다. 생산된 물은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기준을 충족했고, 이 물로 보리를 직접 키워보는 데도 성공해 농업용수로서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전기나 복잡한 장비 없이 나무판 하나로 마실 물과 농업용수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전상민 교수는 “기존 연구들은 태양광을 얼마나 잘 흡수하느냐에 집중했지만, 우리는 구조 자체를 바꿔 주변의 열까지 적극적으로 끌어다 쓰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했다”라며 “간단한 목재 구조만으로 하루 종일 안정적으로 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물 부족 지역을 위한 차세대 친환경 담수화 기술의 실용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