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세금 더 걷어라”…'애국 백만장자' 120명 앞장선 이 나라

앤디 버넘 영국 총리.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앤디 버넘 영국 총리.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부유층 “충분히 감당 가능” 총리에게 부유세 증세 요구

영국의 백만장자 120명이 새 총리에게 자신들에게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보다 거액의 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23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영국 내 부유층 인사 120명은 앤디 버넘 총리에게 부유세 도입을 요청하는 공개 서한을 전달했다.

서명자 명단에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로 알려진 리처드 커티스 감독과 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출신 방송인 게리 리네커가 포함됐다. 이 밖에도 음악가 겸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 영국 베이커리 브랜드 그렉스의 전 경영진 이언 그렉, 금융권 출신 경제운동가 게리 스티븐슨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서한을 통해 “우리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도 된다”며 “그 부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매일 출근해 임금을 받는 사람들의 세금을 올리자는 의미가 아니다”며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소득을 얻는 최상위 부유층이 더 큰 기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공공 부문과 산업, 고용 창출 분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부유층이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일부 부유층이 국가의 장기 방향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서명 운동은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애국 백만장자' 영국 지부가 주도했다. 이 단체는 순자산 1000만 파운드(약 196억원)를 넘는 사람들에게 매년 2%의 세금을 부과할 경우 연간 240억 파운드(약 47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체 측은 해당 재원을 사회적 격차 해소와 안정적인 일자리 확대, 의료·교육·복지 서비스 개선, 중소기업 지원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네커는 “각자가 공정한 몫을 부담하는 것은 영국 사회의 중요한 가치”라며 “많은 일반 시민들이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용을 떠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할 여력이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를 원하고 있다”며 고액 자산가 대상 세금 강화를 촉구했다.

버넘 총리는 취임 전 리네커와의 인터뷰에서 부유세 도입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현재로서는 어떤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공정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다만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제시하지 않았다.

영국 재무부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에마 레이놀즈 재무부 수석부장관은 세금 제도 변경안은 가을 예산 발표 과정에서 공개될 것이라면서도 “더 많은 세금을 내겠다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뜻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에 자발적으로 재정을 지원할 수 있는 기존 제도가 있다며 부유세 도입 요구에 즉각적인 답변은 내놓지 않았다.

노동당 정부는 최근 지지율 하락 속에서 생활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가정용 전력 요금에 적용되는 부가가치세 폐지와 버스 요금 인하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버넘 총리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펍, 클럽, 소규모 음악 공연장 등에 부과되는 사업 관련 세금을 다음 회계연도부터 20% 줄이는 방안도 내놓았다. 정부는 약 3만2000개 사업체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줄어드는 세수를 보완하기 위해 전자담배 판매점 등 지역사회 기여도가 낮은 업종에 대한 세제 지원을 다시 검토하고, 온라인 거래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올리면서도 세금 신고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기업에 대한 관리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