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 토큰증권 시대, 법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진짜 시장은 이제부터다〈하〉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금융당국도 장외거래소 인가 요건, 겸영 허용 범위, 투자자 거래한도, 공정 경쟁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시장 구조를 주요 논의 과제로 삼고 있다. 다만 2027년 제도 시행과 동시에 24시간 실시간 거래와 즉시결제가 가능한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많은 사람들이 토큰증권이라고 하면 블록체인 위에서 밤낮없이 거래되고 매매 즉시 결제까지 끝나는 시장을 떠올린다. 기술적으로는 그런 방향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금융시장에서는 투자자 보호, 자금세탁 방지, 해킹 대응, 시스템 안정성, 기존 증권사·은행·예탁결제원 인프라와의 연동, 감독당국의 감시체계가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초기 STO 시장은 기존 금융망과 블록체인 기반 장부가 결합된 혼합형 구조로 설계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결제수단, 특히 스테이블코인이나 예금토큰, CBDC와 같은 결제 인프라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나 달러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디지털자산이다. 온체인 결제는 증권의 소유권 이전과 돈의 지급이 블록체인 같은 디지털 장부 위에서 동시에 처리되는 방식을 말한다. 현재 주식시장은 거래 체결과 실제 결제가 분리되어 있다. 반면 토큰증권과 디지털 결제수단이 같은 인프라 위에서 움직이면 거래와 결제가 거의 동시에 끝나는 구조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것이 T+0 결제, 더 나아가 24시간 디지털 자본시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다만 실제 구현에는 결제 안정성, 시장감시, 자금세탁방지, 장애 대응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런 방향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 지멘스는 2023년 독일 전자증권법에 따라 6000만유로 규모의 1년 만기 디지털 채권을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했다. 이 사례는 전통 제조기업도 디지털 증권 발행을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디지털 채권 발행이 곧바로 발행·거래·결제 전 과정의 완전한 온체인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증권의 기록과 발행은 디지털화될 수 있지만, 결제수단까지 디지털화되지 않으면 혁신은 절반에 머물 수 있다. 글로벌 시장 전망도 가볍지 않다. BCG는 2024년 말 기준 토큰화 펀드 운용자산이 20억달러 이상에 이르렀고, 2030년에는 글로벌 뮤추얼펀드와 ETF 운용자산의 1%만 차지해도 6000억달러 이상의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도 2026년 중반 기준 약 3100억달러 규모까지 커졌으며, 2028년에는 2조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이러한 수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확정된 미래는 아니다. 실제 성장은 규제 정비, 유통시장 형성, 보관·수탁 인프라, 결제 안정성에 달려 있다.

향후 토큰증권 시장이 본격화될 경우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결국 신뢰가 될 것이다. STO는 자산을 잘게 쪼개 더 많은 투자자가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쪼개진 권리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익은 어떻게 발생하고 배분되는지, 기초자산은 누가 보관하는지, 사업자가 파산하면 투자자는 어떤 보호를 받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시장은 오래가기 어렵다. 일반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을 썼다”는 설명이 아니라 “내 권리가 법적으로 안전한가”라는 질문이다. 따라서 2026년 하반기부터 주목해야 할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하위법규와 가이드라인에서 어떤 기초자산을 허용할 것인가. 둘째, 발행인과 장외거래소, 수탁기관에 어떤 요건을 요구할 것인가. 셋째, 투자자 보호와 유동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면 시장은 열려도 참여자가 부족할 수 있고,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하면 투자자 피해와 시장 신뢰 훼손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2027년 이후 열릴 STO 시장은 단숨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장이라기보다, 제도와 인프라가 검증되면서 단계적으로 커지는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초기에는 조각투자와 비정형 수익증권 중심의 제한된 시장으로 출발하고, 이후 거래 인프라와 결제 시스템, 디지털 결제수단 환경이 성숙하면서 더 넓은 자산군으로 확장될 수 있다. 지금은 기대감만으로 접근할 시기가 아니라, 어떤 규칙이 만들어지고 어떤 사업자가 신뢰를 확보하는지 차분히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STO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자산을 토큰으로 쪼개 파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증권의 발행, 보유, 거래, 결제 방식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다. 법적 기반은 마련됐고, 시행 예정일도 정해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기술의 가능성을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제도와 시장 인프라로 바꾸는 일이다. 이 과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토큰증권은 일시적 테마에 그칠 수도 있고,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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