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스닥이 블록체인을 증권시장의 핵심 인프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제 증권시장의 경쟁력은 거래 속도뿐 아니라 서로 다른 시장과 시간대를 얼마나 안전하게 연결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나스닥의 행보가 이를 잘 보여준다.
나스닥이 9월 10일 가상자산거래소 크라켄의 모회사 페이워드에 1억달러를 투자하고, 나스닥 시장과 크라켄의 토큰화 주식 플랫폼 xStocks을 연결하기로 한 게 바로 그것. 양사는 2027년 2분기 '나스닥 에퀴티 토큰(NETs)' 출시를 추진하고, 페이워드는 나스닥의 시장감시 기술도 도입할 계획이다. 또 나스닥은 12월 6일부터 미국 주식 거래시간을 하루 23시간, 주 5일로 확대한다. 한마디로 전통 증권시장과 디지털자산 인프라의 결합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나스닥이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 첫째, 글로벌 투자자의 거래시간이 더 이상 뉴욕 시간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 투자자에게 미국 정규장은 심야이고, 디지털자산 투자자는 이미 24시간 거래에 익숙하다. 나스닥이 23시간 거래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둘째, 청산·결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식거래는 결제가 완료될 때까지 일정한 담보와 자본이 묶이지만, 주식과 현금이 같은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실시간에 가깝게 결제되면 결제 시간과 담보 비용을 줄이고 자산을 더 빠르게 재활용할 수 있다.
셋째, 경쟁 때문이다. 가상자산 플랫폼들은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주식, 주식 연계 상품을 앞세워 전통 금융시장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통 거래소 입장에서는 이를 막기보다 규제시장 안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거래 인프라로 활용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
시장에서는 특히 나스닥의 방식이 로빈후드 등 기존 토큰화 주식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나스닥은 발행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발행사 주도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토큰화 이후에도 배당·의결권 등 기존 주주의 권리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로빈후드 등의 토큰은 제3자가 실제 주식을 보유하면서 그 가격에 연동되는 별도의 상품을 발행하는 구조다. 따라서 투자자가 원주식의 주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스닥이 발행기업의 참여와 기존 주주권 보장을 강조하는 이유다.
어떤 효과가 기대될까. 첫째, 시장 접근성이 높아진다. 거래시간과 국경의 제약이 줄고 소액 거래가 쉬워지면 미국 주식의 글로벌 투자층은 더 넓어질 수 있다. 둘째, 혁신의 무대가 거래에서 결제·배당·의결권 등 후선업무로 확장된다. 이 과정이 디지털화되면 증권시장의 비용과 처리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셋째, 주식·채권·펀드·스테이블코인 간 장벽이 낮아진다. 결국 토큰화의 진짜 경쟁력은 '주식을 코인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서로 다른 시장 사이를 얼마나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하게 하느냐에 있다.
나스닥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런던증권거래소(LSE)는 9월 1일 페이워드와 손잡고 영국 상장주식의 토큰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규제 승인을 전제로 2027년부터 연장시간 거래 플랫폼 'LSE 24'와의 연결을 추진한다. 독일에서는 도이체뵈르제그룹의 증권 예탁·결제 기관인 클리어스트림이 기존 증권과 토큰화 증권을 한 플랫폼에서 발행·결제·보관하는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홍콩도 토큰화 투자상품의 24시간 2차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 정비에 나섰다. 글로벌 경쟁의 축이 전통 거래소와 가상자산 플랫폼의 대체 경쟁에서 서로의 인프라를 연결하는 융합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단 얘기다.
물론 한계도 있다. 가장 큰 과제는 유동성의 분산이다. 같은 주식이 기존 거래소와 여러 토큰화 플랫폼·블록체인에서 따로 거래되면 오히려 가격과 거래량이 쪼개질 수 있다. 24시간 거래 역시 거래시간을 늘리지만, 유동성을 자동으로 늘려주지는 않는다. 심야에는 거래가 줄어 호가 차이와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고, 거래소·증권사·청산기관의 상시 운영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미래의 거래소는 기존 시장과 블록체인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거래소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거래소는 가격발견과 시장감시를, 예탁·청산기관은 법적 권리 보장을 맡고, 블록체인은 자산의 발행·이전·결제·담보 활용을 담당하는 구조다. 나스닥, 런던증권거래소, 도이체뵈르제그룹 같은 전통 거래소가 토큰화 인프라 구축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거래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래소의 작동 방식을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금융위원회가 토큰 증권 정책 방향에서 조각 투자를 넘어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정형 증권까지 토큰화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27년 2월 법 시행과 함께 기관투자자용 사모 MMF·사모사채와 비상장주식부터 시작하고, 이후 공모증권으로 확대해 최종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 등을 활용한 온체인 결제까지 연결한다는 3단계 구상이다. 특히 NYSE와 나스닥 사례를 참고해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상장 주식 토큰화 모델 검증과 시범사업을 병행한다는 방침도 처음 명시했다.
미국 등 글로벌 움직임을 고려하면 전자증권을 단순히 분산원장에 옮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거래소의 거래시스템, 예탁결제원의 권리관리, 증권사의 계좌관리, 토큰증권 원장과 향후 스테이블코인 결제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해외시장과도 상호운용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스닥이 발행기업의 참여와 기존 주주권, 시장감시를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블록체인 도입 자체보다 투자자 권리와 시장 신뢰를 유지하는 데 제도의 중심을 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증권시장의 경쟁력은 단순한 거래 속도뿐 아니라 증권과 자본이 시장과 시간, 국경을 넘어 얼마나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금융경제포럼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