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달을 보라는데, 왜 내 손가락만 보고 있는가?” 널리 알려진 이 말은 능엄경(楞嚴經)에 나오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의 가르침이다. 여기에서 '달'은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 본질 등 목적을 의미하며, '손가락'은 목적에 이르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제도 등 수단을 뜻한다. 수단은 어디까지나 목적을 실현할 때만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달(목적)을 까맣게 잊은 채, 손가락(수단) 자체에 맹목적으로 집착한다.
부처는 손가락(수단)을 달(목적) 자체로 착각함으로 인해 잃게 되는 세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는 마땅히 보아야 할 밤하늘의 달을 잃어버리는 실월(失月), 둘째는 손가락이 무엇을 위한 도구인지조차 잊어버려 손가락 본래의 기능과 의미마저 상실하는 실지(失指), 즉 역망기지(亦亡其指)! 그리고 셋째는 달이 주는 밝음(明)과 손가락이 가리는 어둠(暗)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극심한 인지적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는 부지명암(不知明暗)이 그것이다.
견지망월의 잘못은 삶의 전반에서 관찰된다. 학문의 목적인 진리 탐구와 자아실현은 사라지고, 교재나 교수의 설명이라는 방편에만 치우쳐 수단적 지식에 갇혀버리며, 대화와 소통에 있어서 본질적인 주제는 걷어차고 말꼬리나 어투를 잡고 늘어지면서 본질을 왜곡한다. 특히, 정치 현장에서는 국가 안위와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잊은 채, 진영 이념과 당리당략에 몰입한다.
그 결과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무리하게 밀어붙여 사회적 정의를 파괴하고 국민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기고 있다. 고환율, 고물가에 대한 무대책과 더불어 주식시장의 교란으로 인한 민생의 도탄(桃灘), 보완수사권 박탈과 사법체계 파괴를 통한 국민 안전의 실종, 불법적 개헌과 영구집권을 통한 국가 사회의 사유화라는 군부 쿠데타와 같은 망상 등은 '사회정의와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궁극적 목적(달)을 망각한 채, 전도몽상(顚倒夢想)에서 비롯된 방편(손가락)에만 몰두하는 견지망월의 가르침이 경계하는 폐단 그 자체를 보여준다.
본질을 놓치고 수단에 몰입하는 치명적 실수의 근본 원인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과 아상(我相)에 있다. 현상계의 모든 조건이 인(因)과 연(緣)이 되어 상호의존하며 세상사(世上事)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연기(緣起)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어둠 속에 갇히면, 인간은 '내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아상(我相)을 세워서 자기파괴적 집착을 보이게 된다.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아상이 네 가지의 왜곡된 마음 작용(번뇌(煩惱))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아치(我痴, 연기적 인과율을 깨닫지 못하고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어리석음), 아견(我見, 자기 판단과 이념만이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단정 짓는 편협한 독단), 아만(我慢, 타인의 대안과 전문가의 피드백을 무시하고 자신의 지위만 내세우는 오만). 아애(我愛, 권력, 주도권,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강박적 집착)가 그것이다. 이러한 작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인격적 결함이라서가 아니라, '마음을 어지럽히고(煩) 괴롭게(惱) 만들어 스스로를 고통과 번뇌의 굴레에 가두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능엄경이 묻는다. “당신의 손가락이 과연 밤하늘의 달을 가리키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의 눈(양심)을 가리고 있는가?” 금강경(金剛經)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벗어날 때 비로소 진실(진리(眞理))을 마주한다”고 경책한다. 네 가지 번뇌로 인한 현실적인 고통, 훗날에 주어질 역사적 과보(果報)와 후손에게까지 전해지는 업보(業報)를 두루 살펴본 후, 이념과 권력 그리고 영생(永生)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지혜를 회복할 때 비로소 국가와 사회가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되리라. 비단 위정자뿐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기관이나 기업 또는 조직에서의 리더들도 자신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필자는 지금 금강경에 빠져 있다. 그런데… 수행(修行)을 하고는 있나? 글을 마치려 하니 나의 반성문에 다름이 아니다.
이강우 동국대 컴퓨터AI학부 교수 klee@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