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호흡기내과 전문의이자 소설가 진성림은 오히려 “죽음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첫 장편소설 '너는 나의 새벽이었어'에서 상실 이후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그는, 두 번째 작품 '그리고 다시, 우리'에서 질문을 한층 깊게 가져간다. 죽음을 견디는 일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32년 동안 의료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온 진성림 작가를 만나 의사가 끝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두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을 들었다.
-“사람은 죽음 앞보다 살아남은 뒤 더 많이 흔들린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의사들은 죽음을 많이 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떠난 사람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입니다. 응급실에서 생명을 살린 뒤에도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었고, 반대로 큰 상실을 겪고도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국 저를 오래 붙잡았던 질문은 죽음이 아니라 '사람은 무엇으로 다시 살아가는가'였습니다.
-그 질문이 '그리고 다시, 우리'의 시작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첫 작품 '너는 나의 새벽이었어'는 상실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작품을 마친 뒤에도 질문은 남았습니다.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결국 사람이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관계를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제목에 '우리'라는 말을 넣은 것도 한 사람을 다시 삶으로 이끄는 힘이 결국 누군가와 맺어온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응급실과 법정이 함께 등장합니다. 현실적이면서도 긴장감 있는 설정입니다.
응급실은 몇 분 안에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공간이고, 법정은 그 몇 분의 선택을 오랜 시간 되짚어 보는 공간입니다. 저는 이 두 공간이 인간의 선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는 눈앞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빠르게 판단하지만, 그 선택은 이후 법과 제도의 기준으로 다시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작품 속 성림도 환자를 살린 뒤 법정에 섭니다. 그러나 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의료법 자체가 아니라, 선택을 내린 뒤에도 그 책임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한 사람의 시간이었습니다.
-실제 임상 경험이 작품의 의료 장면에 어느 정도 반영됐습니까.
특정 환자나 사건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응급상황에서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 판단을 내리는 사람에게 어떤 압박이 가해지는지는 오랜 의료 경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특히 기관지내시경 시술을 둘러싼 장면은 의학적 사실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상황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썼습니다. 의사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그 순간에는 완벽한 정답보다 감당해야 할 선택이 먼저 주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희의 죽음은 작품의 분위기를 크게 바꾸는 장면입니다.
가장 오래 붙잡았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죽음 자체를 쓰는 것보다 어려웠던 것은 그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의사로 살아오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생명이 멈춘 때만이 아니라,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침묵을 지켜보는 때였습니다. 원희의 죽음도 사건의 결말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가 남긴 선택과 진실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한 사람의 삶이 죽음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담고 싶었습니다.
-첫 작품과 이번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두 작품은 겉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너는 나의 새벽이었어'에서는 사람이 상실 이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를 물었고, '그리고 다시, 우리'에서는 무엇이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오래 해왔지만, 의료 현장에서 배운 것은 치료가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의학은 생명을 붙잡아 줄 수 있지만, 살아갈 이유는 가족과 친구,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쉽게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까.
현실의 사람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성림과 슬기, 정원 역시 누구 한 사람만 옳거나 틀린 인물로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먼저 답을 정해버리면 독자가 들어올 자리가 줄어듭니다. 누가 옳았는지를 판단하기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이 작품에서 더 중요했습니다.
-앞으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쓰게 될까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의사로서 죽음을 오래 봤지만, 소설가가 된 뒤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됐습니다.
첫 작품도, 이번 작품도 결국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지를 묻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도 사건보다 사람을, 결말보다 그 이후의 시간을, 정답보다 오래 남는 질문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은 죽음 앞보다 살아남은 뒤 더 많이 흔들리니까요.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