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주민들은 새로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선택했다. 그러나 지방의회가 일해야 할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 지방분권을 강조하면서도 지방의회를 사실상 집행기관의 보조기관처럼 취급하는 모순을 이제 끝내야 한다. 그 출발점이 '지방의회법' 제정이다.
2022년 전부개정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지방의회에 인사권과 정책지원관 제도가 도입됐다.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그러나 인사권만 지방의회 의장에게 넘겼을 뿐 조직·정원·예산에 관한 핵심 권한은 여전히 단체장과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 직원을 임명할 수는 있지만 필요한 조직과 정원을 스스로 설계하지 못하고, 의회 운영에 필요한 예산도 집행기관이 편성한다. 열쇠는 받았지만 문을 열 수 없는 '반쪽 독립'이다.
지방의회는 주민이 직접 선출한 주민대표기관이다.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확정하며, 행정사무감사와 조사를 통해 집행기관을 견제한다. 지역의 주요 정책과 주민의 권리·의무를 결정하는 기관이 독립된 조직과 전문인력, 안정적인 예산 기반조차 갖추지 못한다면 견제와 균형은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강한 단체장과 약한 의회의 구조에서는 주민의 권리도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
국회에 '국회법'이 있듯 지방의회에도 독립된 법률이 필요하다. 지방의회법에는 의회사무기구의 설치와 정원 결정권, 전문인력의 안정적 운영, 의회 예산의 자율성, 조례입법권 확대, 인사청문회와 행정사무감사의 실효성 강화가 담겨야 한다. 정책지원관도 의원의 개인 보좌나 단순 자료수집에 머물지 않도록 의회 전문직렬과 명확한 직무기준을 마련하고,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 안정성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
다만 지방의회법은 지방의원의 특권을 확대하는 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한이 커지는 만큼 책임과 통제도 강화돼야 한다. 의정활동과 예산 사용의 투명한 공개, 이해충돌 방지, 부당한 인사개입 차단, 윤리심사의 실효성 확보와 주민평가 제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지방의회법은 지방의원의 특권법이 아니라 주민을 위한 지방의회의 책임법이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지방의회법이 제정되면 현행 지방자치법의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법체계 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방의회의 불완전한 지위를 방치할 수는 없다. 지방자치법을 지방자치의 기본법으로 재구성하고, 그 아래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조직·운영을 각각 체계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권한은 확대하면서 지방의회만 낡은 제도에 묶어 두는 것은 진정한 자치분권이 아니다. 지방의회가 바로 서야 지방정부가 바로 서고, 지방정부가 바로 서야 주민의 삶이 달라진다.
이제 제22대 국회가 결단해야 한다. 지방의회법 제정은 선택이 아니라 지방자치 완성을 위한 국가적 책무다. 더 이상 검토와 논의라는 이름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좋은 조례가 지역을 바꾸고, 전문적인 지방의회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꾼다.
박형규 한국자치입법전문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