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가전별 ESG 규제…韓 수출체계 재편 '발등의 불'

디지털제품여권 등록부 가동
부품·재활용 데이터까지 관리
내년 수리용이성 등급 표시도
韓기업 제품 전과정 대응 비상

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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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규제가 개별 제품까지 확산하고 있다. 앞으로 부품 공급과 분해·수리가능성 등을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은 제품은 EU 시장 출시가 어려워진다.

한국 수출기업은 공급망 데이터를 연결하는 동시에 예비 부품 공급과 수리서비스(A/S) 체계까지 다시 갖춰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제품 데이터에 기반한 규제 확대로, 우리 수출 기업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EU는 지난달 디지털제품여권(DPP) 등록부를 가동했다. DPP는 제품에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소재 구성과 탄소발자국, 수리·재활용 정보 등을 연결하는 '제품별 디지털 신분증'이다. 소비자나 수리업체, 재활용업체, 세관·시장감시 당국은 제품에 부착된 QR코드 등 식별수단을 통해 권한에 맞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DPP 등록부 가동에 이어 이달 독일 등 EU 주요 회원국 단위의 수리권 지침도 시행 절차에 들어갔다. EU 방침에 따라 독일 이외 회원국도 순차적으로 입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수리권 지침은 법정 보증기간 이후에도 제조사에 수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냉장고, 스마트폰 등이 적용 대상이다. 제조사는 보증 기간 이후에도 수리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수리용 부품과 공구도 공급해야 한다. 독립 수리업체가 호환·중고부품을 사용하는 행위를 소프트웨어(SW) 등으로 금지하는 행위도 불가능해진다.

EU 디지털제품여권 도입 주요 일정
EU 디지털제품여권 도입 주요 일정

EU는 지속가능제품 에코디자인 규정(ESPR)에 따라 여러 제품군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평적 수리용이성' 요건도 마련하고 있다. 내년 가전 분야 도입을 목표로 세부 기준을 마련 중이다. EU에 수출하는 소비자 전자제품과 소형가전은 예비부품 공급기간과 배송기간, 부품 가격, 공구, 소프트웨어 지원기간 등을 DPP에 등록해야 한다. 최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제품은 출시가 제한된다. 당장 의류건조기는 내년 1월부터 에너지라벨에 수리용이성 등급을 의무 표시하도록 했다.

스마트폰 등 일부 가전 분야에서는 수리용이성이 제품 평가 지표로 쓰인다. 미국 소비자단체(PIRG)가 수리용이성을 평가한 결과 애플은 D-, 삼성전자는 D등급을 받았다. DPP 시행이 본격화될 경우 수리용이성 등급이 낮은 제품은 소비자 선택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애플이 독자 규격을 폐기하고 USB-C로 충전 단자를 전환한 것과 같은 사례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산업계는 제품 단위로 확산하는 환경규제 압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EU가 규정한 시장 진입 규칙인 만큼 국내에서 규제 완화나 유예를 요구하기 어렵다.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비용을 투입해 제품 설계와 부품 공급·수리망·데이터 체계를 다시 구축하거나 수익성이 낮은 제품과 수출 물량을 줄이는 것뿐이라는 분위기다.

산업계 관계자는 “유럽 규제는 국내 기업이 시행 시기나 기준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인증 비용 지원 이외에는 이렇다할 지원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판매량이 많지 않은 제품까지 부품과 수리망, 관련 데이터를 장기간 유지하면 사업성이 나오지 않을 수 있어 일부 제품은 유럽 출시를 포기하는 선택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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