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중소기업 디지털전환을 도시 단위로 묶는다…중국 시범도시 정책 구조

[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진단·공급기업·재정보조·표준모델을 산업클러스터에 배치하는 '도시형 DX'

중소기업 디지털전환이 느린 이유를 기술 부족으로만 설명하면 해결책은 소프트웨어 보조금에 머문다. 실제로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진단하기 어렵고, 공급업체 품질을 평가하기 힘들며, 생산중단과 데이터보안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다. 한 기업의 ERP나 MES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산업 전체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

중국 재정부와 공업정보화부는 중소기업 디지털전환 시범도시(中小企业数字化转型城市试点)를 통해 기업별 지원을 도시·산업클러스터 단위로 묶었다. 중앙재정이 도시를 선정하고, 도시는 세부 제조업을 정해 진단·공급기업·개조비용·대표사례와 확산을 통합 운영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 시범도시 정책은 중소기업 한 곳에 시스템을 사주는 사업이 아니라, 같은 산업의 수백개 기업이 공통으로 사용할 디지털 서비스시장과 확산모델을 만드는 정책이다.

[테크 차이나] 중소기업 디지털전환을 도시 단위로 묶는다…중국 시범도시 정책 구조
중앙정부는 기업이 아니라 도시를 선정한다

2023년 시작된 시범사업은 중소기업이 밀집한 도시를 선정해 2년가량 집중 지원한다. 첫 차수에는 30개 도시가 포함됐고, 이후 차수에서 35개 도시·지역이 추가됐다. 중앙재정 지원 한도는 성도·계획단열시는 최대 1억5000만위안(약 2209만달러), 일반 도시는 최대 1억위안(약 1473만달러) 수준으로 설계됐다.

도시는 자금을 개별기업에 똑같이 나눠주지 않는다. 지역 제조업 가운데 2~3개 세부산업을 선정하고, 전정특신·소거인과 산업사슬 핵심기업, 일반 중소기업을 함께 묶는다. 공급기업과 솔루션을 공모하고, 기업진단·개조·평가와 확산을 관리한다.

중앙정부가 도시를 단위로 선택한 이유는 기업 디지털전환이 지역 공급망과 서비스시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같은 산업의 기업은 공정과 장비, 품질·고객 요구가 비슷해 표준화된 솔루션을 반복 적용할 수 있다.

첫 단계는 장비 구매가 아니라 진단이다

시범도시는 먼저 기업 디지털 수준과 핵심 문제를 진단한다. 주문·설계·생산·품질·물류·에너지·경영 가운데 어디에서 데이터가 끊기고 손실이 발생하는지 확인한다.

진단 없이 시스템을 구매하면 기존 수작업을 화면으로 옮기거나, 부서별로 데이터가 더 분절될 수 있다. 중국 정책이 '평가진단-개조실행-사후평가' 절차를 강조하는 이유다.

상하이 쑹장구의 지원정책은 진단비를 기업당 최대 2만5000위안(약 3680달러)까지 지원하고, 디지털전환 비용 최대 50%, 기업당 최대 100만위안(약 14만7300달러)을 보조한다. 지역과 사업마다 비율은 다르지만 진단을 독립된 서비스로 인정한 점이 중요하다.

‘작고 빠르고 가볍고 정확한’ 솔루션을 만든다

중국은 중소기업용 서비스를 小快轻准(작고·빠르고·가볍고·정확한 솔루션)이라고 부른다. 대기업용 시스템을 축소해 파는 것이 아니라 설치기간과 초기비용을 낮추고, 특정 공정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제품을 뜻한다.

공급목록에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산업용 게이트웨이와 센서, 생산·품질·에너지관리, AI 검사, 산업제어와 보안이 포함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컨설팅·교육을 묶은 서비스도 있다.

도시는 공급기업을 선정하고 가격·기능·서비스 범위를 공개해 중소기업 탐색비용을 줄인다. 대표기업에 먼저 적용한 뒤 비슷한 기업이 '보고 배우고 따라 하는' 방식으로 확산한다. 중국 정책문서가 '看样学样(모범사례를 보고 따라 배우기)'를 강조하는 이유다.

산업클러스터가 디지털전환 단위다

자동차부품 기업은 완성차 품질·납기·추적기준을 맞춰야 하고, 전자기업은 부품·설비·생산 이력과 고객데이터를 연결해야 한다. 같은 공급망의 일부 기업만 디지털화하면 정보가 다른 기업에서 다시 끊긴다.

시범도시는 체인주 기업과 협회를 활용해 주문·품질·물류·정산 데이터 공통규격을 만들고, 협력사에 솔루션을 확산한다. 전정특신 기업은 대표사례가 되고, 일반 중소기업은 표준형 서비스를 도입한다.

이 구조는 디지털전환을 기업 내부 효율화에서 공급망 협업으로 확장한다. 대기업 ERP와 중소기업 MES, 물류·금융 플랫폼이 연결되면 주문과 재고, 품질과 자금흐름을 함께 관리할 수 있다.

재정은 공급기업 시장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중앙·지방재정은 기업 도입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지역에 디지털서비스 공급기업을 육성한다. 우수 솔루션을 목록화하고, 반복 적용을 통해 가격과 품질을 개선한다. 서비스기업은 여러 중소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해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이 점이 단발성 시스템 구매와 다르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기업이 외부 솔루션을 한 번 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역 공급사가 진단·구축·운영·업데이트를 지속하는 시장을 만들려 한다.

다만 공급기업 목록이 폐쇄적이면 새로운 솔루션이 들어오기 어렵고, 지방정부와 업체 이해관계가 생길 수 있다. 경쟁과 성과평가, 기업의 선택권이 필요하다.

디지털전환 시범도시 다섯 가지 병목

첫째는 '보이는 디지털화'다. 화면·대시보드와 장비 연결은 늘지만 실제 불량률·납기·원가가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

둘째는 공급업체 종속이다. 데이터와 인터페이스가 특정 업체에 묶이면 지원 종료 뒤 높은 유지비를 부담하거나 시스템을 바꾸기 어렵다.

셋째는 중복 구축이다. 기업마다 별도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공급망 공통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넷째는 보안이다. 생산·주문·고객데이터가 클라우드와 체인주 플랫폼에 집중되면 영업비밀과 사이버보안 위험이 커진다.

다섯째는 보조금 의존이다. 정부 지원이 끝난 뒤 기업이 스스로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서비스시장은 지속되지 않는다.

성과는 설치 수가 아니라 생산성과 반복 확산으로 봐야 한다

시범도시 성과를 디지털화 기업 수와 집행액으로만 보면 공급업체가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집중한다. 공정시간·불량률·재고·에너지·납기·매출채권 회수와 고객 만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봐야 한다.

같은 솔루션이 보조금 없이 다른 기업에 반복 판매됐는지도 중요하다. 대표사례가 산업클러스터 전체로 확산되고, 공급기업이 지역 밖 고객을 얻어야 시장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기업 데이터 소유권과 이전 가능성, 표준 인터페이스, 유지보수 비용과 보안 사고도 평가해야 한다. 디지털화 양보다 지속가능성을 보는 지표다.

공급기업 시장 품질이 전환 속도를 결정한다

중소기업 디지털전환은 수요기업만 지원해서는 확산되지 않는다. 진단, 센서·게이트웨이, MES·ERP, 클라우드, AI, 보안과 유지보수를 제공할 공급기업이 지역에 있어야 한다. 중국 시범도시는 공급기업 목록과 표준계약, 업종별 솔루션을 만들고 여러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목록제는 새로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실적이 많은 대형 공급기업에 사업이 집중되면 지역 중소 서비스기업이 성장하지 못하고, 고객은 비슷한 솔루션을 반복 도입한다. 공급기업 평가는 계약액이 아니라 고객 생산성, 시스템 사용률, 데이터 품질, 재구매와 유지보수로 해야 한다. 일정 기간 성과가 없는 공급자는 목록에서 제외하고 신규기업이 시험할 수 있는 샌드박스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전환 데이터 귀속도 중요하다. 설비데이터와 생산 노하우가 플랫폼 공급자에게 종속되면 중소기업이 다른 솔루션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데이터 형식과 API, 종료 시 이전, 사이버보안과 장애 책임을 표준계약에 넣어야 한다. '작고 빠르고 가볍고 정확한' 솔루션은 저가 제품이 아니라 전환과 교체 비용이 낮은 제품이어야 한다.

한국 솔루션 기업의 중국 진출 가능성

한국 산업용 AI·센서·MES·보안 기업은 중국 시범도시와 산업단지 공급자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현지 공급자 등록, 중국어 서비스, 데이터 현지화, 정보보안 인증, 가격과 사후지원 요건이 사업마다 다르다. 중국 현지 파트너를 통해 제품을 공급할 때 소스코드와 고객데이터 접근범위를 계약으로 제한해야 한다.

중국 시장은 규모가 크지만 범용 솔루션만으로는 경쟁하기 어렵다. 반도체 장비, 자동차부품, 바이오공정처럼 한국 기업이 산업지식을 가진 세부 업종을 선택하고, 중국 고객의 기존 설비와 로컬 소프트웨어를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시범사업 수주보다 보조금이 끝난 뒤 고객이 유지비를 지불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는 국내 스마트공장 실증데이터를 수출 레퍼런스로 표준화하고, 중국·아세안 제조단지에서 상호운용성을 시험할 수 있는 공동 테스트베드를 지원할 수 있다.

시범도시는 ‘한 번 설치’에서 ‘집단 확산’으로 넘어가야 한다

중앙재정이 도시를 선정하는 이유는 개별기업 보조보다 집적효과를 만들기 위해서다. 같은 업종의 여러 기업이 공통 진단, 데이터모델과 솔루션을 사용하면 공급기업 개발비가 낮아지고, 선도기업 성공사례를 인근 기업이 따라갈 수 있다. 중국 정책이 '보고 배우고 따라 하기'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다만 모범공장을 그대로 복제하면 설비·공정 차이를 무시할 수 있다. 공통모듈과 기업별 맞춤 영역을 나누고, 보조금 종료 뒤에도 지역 서비스기업이 유지보수와 업그레이드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시범도시 성공은 몇 개의 화려한 공장보다 다수 중소기업 평균 생산성과 디지털 역량이 올라가는 데 있다.

한국은 스마트공장 사업을 ‘도시형 서비스시장’으로 확장해야 한다

한국은 스마트공장과 AI 자율제조, 클라우드·데이터 지원사업을 운영해 왔다. 문제는 개별기업의 장비·솔루션 도입에 집중하면서 공급망 데이터와 지역 서비스기업을 함께 키우는 구조가 약하다는 데 있다.

정부는 중앙에서 같은 시스템을 보급하기보다 지역별 세부 업종을 선정하고, 진단-공급자-실증-성과를 한 플랫폼에서 관리해야 한다. 지자체는 기업 수보다 산업클러스터 공통문제와 데이터 규격을 정의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사에 독자 플랫폼 사용을 강제하기보다 주문·품질·추적의 최소 공통규격과 API를 공개해야 한다. 금융권은 디지털화 인증보다 실제 생산성과 주문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를 해야 한다.

대학과 테크노파크는 일회성 교육보다 공정·데이터·보안 전문가를 공급하고 독립적으로 성과를 검증해야 한다. 스타트업과 공급기업은 보조금용 구축보다 반복 판매 가능한 제품과 데이터 이동권을 설계해야 한다.

중국 시범도시에서 배울 것은 도시가 공급업체를 지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같은 산업의 여러 중소기업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를 묶어 진단·표준·서비스시장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국은 스마트공장 설치 대수를 늘릴 것인가, 아니면 지역산업 전체가 보조금 없이 계속 사용할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 것인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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